“색은 마음의 표상이 먼지를 결성한 것”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의 사상을 보통 유심론이라 여기려 한다. 나는 저 구절이 서양철학의 개념에 따라서 유물론과 대립되는 뜻에서의 유심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법의 본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공성(空性), 일심(一心), 그리고 원기(元氣)와 서로 상통하는 뜻으로 풀이되겠다. 법계의 법성이 공이면서 마음이고 그리고 결코 마르지 않는 생기(生氣)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법성이 일심이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마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우주의 법계가 곧 절대적 무아로서의 우주적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성을 원기로 읽는 법은 흔하지 않다. 그것은 불교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의 본질은 욕망이다. 자아의 마음은 소유론적 욕망으로, 무아의 마음은 존재론적 욕망으로 나툰다. 아무튼 이 욕망이 기운의 힘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심의 욕망은 인간의 소유론적 탐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의 무한성에서 자발적으로 존재에로 솟아 오르는 원력의 무한 힘이라고 읽어도 괜찮으리라.
그러므로 이 우주의 불변적이고 증감하지도 않는 자연성으로서의 법성은 공하면서도 마음이고, 고갈되지 않는 기운의 공덕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아의 마음이기에 그것은 어떤 걸림도 없는 무애자재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자아의 마음은 아무리 보편적이라 주장되어도 어떤 저항과 걸림이 없는 그런 원융성을 지닐 수 없다. 왜냐하면 보편적 자아의 개념은 논리적 보편의 가면을 쓴 심리적 자아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서 철학이 주장하는 모든 종류의 논리적 보편성은 심리적 자아가 은밀히 좋아하는 물질적 정신적 이익취득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가 의식하는 아상은 늘 자아에게 이로운 것을 바깥에서 타동사적으로 소유하려 한다. 자아의 사상은 이기배타적 속성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무아의 경지는 늘 마음이 스스로 이로운 것을 자동사적으로 분비하여 솟아 오르게 한다. 이것은 타동사적 이기(利己)가 아닌 자동사적 자리(自利)다. 무아의 마음은 무심의 즐거움을 표현하려는 자기 증여의 존재론적 너그러움을 필연적으로 나툰다. 이런 무아의 존재론적 욕망을 불법은 자비(慈悲)와 희사(喜捨)의 무한 기운을 뜻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불렀다. 보신불은 법신불이 스스로 나투신 존재론적 욕망의 원기와 같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우주의 두두물물은 다 무아의 공한 법성의 마음이 자신의 사무량심을 무한히 보시하려는 원력의 다양한 현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화엄적으로 표현하여 이 우주의 두두물물은 천백억개의 가지마다 피어나는 부처님의 화현으로서의 연꽃인 보련화(寶蓮華)라고 상징화할 수 있겠다. 마음의 욕망은 곧 존재에로의 현상화와 같다. 『능엄경』 「불수기품」에 문수보살이 말씀하신다. ‘색은 마음의 표상이 먼지를 결성한 것이다.’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에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이 있다. ‘법신은 색의 체이기에 색으로 능현된다. 이른바 무시이래로 색과 마음이 둘이 아니다.’ 삼라만상은 다 공한 법성의 일심이 고갈되지 않는 원력의 힘으로 물질의 색상을 결성한 것이다.
색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 일심의 표현이 곧 화신불이겠다. 마명은 이 삼위일체적 불법의 이치를 체(體)상(相)용(用)으로 묘사했다. 일체유심조의 철학은 마음이 욕망이고 욕망이 소유나 존재에로의 현상으로 나타남이고, 그 욕망이 색상을 그렇게 결성했다는 것을 뜻한다. 유무정(有無情) 중생이 다 일심의 화신불과 같다. 인간이 삼라만상의 중생들을 다 석가모니 화신불로 경배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깨닫는 길은 스스로 마음을 자아에서 무아로 회심시키는 수행의 과정과 같으리라. 불교는 허공과 일심(體), 무한 원력의 기운(相), 다양한 감화력(用)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생멸하는 화신불에서 덧없는 환상과 금빛 찬란한 미의 물결을 동시에 읽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