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⑤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나

기자명 법보신문
인연화합 있어야 실체 발현
상극도 상생하는 것이 자연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만약 거문고 안에 거문고 소리가 있다면, 갑 속에 있을 때는 왜 소리가 없으며, 만약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면, 어찌하여 그대의 손 끝에선 들리지 않나.(若言琴上有琴聲 放在匣中何不鳴 若言聲在指頭上 何不於君指上聽) 하였다. 이 시야말로 모든 만유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이면서도 쓰임의 작용은 서로의 인연에서 이루어진다는 실증을 여실하게 말한 것이다. 거문고는 소리의 인자는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손가락이라는 부딪침의 연고로 그 능력을 발휘하여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어 만인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 인습이나 관습으로 거문고에서 소리가 난다 하는데 그렇다면 갑 속에서는 왜 소리가 없느냐는 것이 이 시인의 질문이다. 아니다. 손 끝에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다시 가져 본다. 그렇다면 손가락만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내 손 끝에서는 왜 소리가 들리지 않는냐는 의심이 계속될 뿐 해답이 안난다. 결국 거문고와 손 끝이 만나는 찰나를 잡아야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인연화합이라 할 수밖에 없으니 삼라만상 만유의 실상이 들어나려면 인연이 이렇듯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거문고가 소리낼 수 있는 속성을 소리의 원인이라 한다면 손 끝을 만나 소리의 실체를 발현하는 결과를 얻으니 이를 또 인과의 결합이라 하게 된다. 거문고의 인(因)과 손가락의 연(緣)과 거문고 소리의 과(果)는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융합체이다. 개체로 따로 따로 있을 때는 아무런 상관성을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체들이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인연화합으로 만나게 되면 상상도 못했던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불가사의라 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사물 존재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유체계를 한 번 뒤집으면 불가사의의 초월적 상상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상상의 공간이나 상상의 시간이 아니라 여여한 사물 존재의 실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원소적 존재에는 애당초 상충적 대립으로 결코 시공을 같이할 수 없는 듯한 것도 있다. 삶에 가장 필요한 물과 불이 그럴 것이다. 생물의 성장 요소로 가장 소중한 이 두 물체는 그 속성이 상극이지만, 이 상극이 서로 화합하지 않고서는 생물의 생성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자연이다. 식물이 싹을 티우고 자라게 하려면 물과 불이 한 공간에서 융합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식물의 씨앗은 습기를 만나야 싹을 티우지만, 이 때에도 불의 온도로 조절되지 않고서는 싹은 트지 않는다. 이렇다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조화적 결합으로 서로는 존재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서로 인연화합으로 조화로운 변화만이 존재하는 것이지 상극적 충돌은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물과 불은 서로가 부딪치지 않고서는 상생이 될 수 가 없다. 불은 습기를 싫어하지만 습기를 만나지 않고서는 화기가 돋아나지 못한다. 호수의 표면에서 습기와 화기가 부딪칠 때 열기와 습기는 같이 공중으로 상승한다. 공중으로 오른 습기는 응집된 구름이 되고 화기는 날카로운 천둥번개가 된다. 화기가 아니었으면 구름이 없고 구름이 없으면 빗물이 없으니 기실 불이 물을 만든 것이다. 습기가 없었으면 수면의 열기가 공중으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니 번개불의 형성도 있을 수가 없다. 일상적으로 상극이라 해야 하는 물과 불은 오히려 상생의 공존관계인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기요 전기는 불인데 이 전기가 물에서 나온다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리에 어긋나는 말을 ‘언어도단’이라 하는데 ‘수력발전’이라는 말만큼 언어도단이 있는가. 물이 불을 만든다는 단적인 표현이 아닌가.

만물은 서로 화합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이 변화작용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닐까. 이를 논리화하면 진화론이 될 법한데. 요즘 ‘지적설계론’이라는 종교적 이론으로 과학계가 도전을 받고 있다 하니 여여한 대자연을 다시 설계해야 하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