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업의 달인과 사회적 구원

기자명 법보신문
인간이 성인될 수 있을까
능력의 이타행이 보살도


인간은 그의 수준만큼 세상을 보고 말하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철학교수 자리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나무나 물이나 구름 등에 대해서 즉흥연설을 한 번 부탁하면, 그 사람의 즉흥연설이 그의 생각과 느낌의 수준을 에누리 없이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늘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 번도 실천한 적은 없었다. 즉흥연설이 그 사람의 사람됨의 수준을 여실히 짐작케 하는 길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성인이 되는 길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고 회의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인간은 불가능한 그런 성인의 헛된 꿈을 추상적으로 갖기 보다 차라리 신처럼 절대자를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진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젊은 날에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젊은 날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유교가 말하는 범부의 기질을 바꾸고 상향해야 성인이 된다는 표준적 성인론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있는 범부의 기질을 바꾼다는 것은 납을 금으로 바꾸겠다는 연금술만큼 불가능한 착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유교적 성인의 구체적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연금술사가 납을 금으로 바꾸게 하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은 상상 속의 영약이지 현실의 물질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인간의 유한성을 너무 강조하고 절대성을 신에만 부여하는 서양철학과 신학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런 경우 세상의 많은 일이 부조리하게 여겨지면서 반신적(反神的)인 부조리 철학이 일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불교는 그 현자의 돌이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묘용이 바로 그 현자의 돌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부처와 같은 성인이 바깥에 객관적 표준으로 정립되어 있어서 내가 거기에 이르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현자의 돌이 되어 본능적 마음을 본성적 마음으로 치환시키기만 하면 나는 부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불교가 가르친다. 나는 이런 불교가 좋아 불자가 되었다. 연금술이 말하는 현자의 돌은 불교가 상징해 온 여의주와 다르지 않겠다.

따라서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가장 긴급한 일이지, 납의 세상을 금의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모든 정치 도덕적 혁명이 다 덧없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여의주는 바깥 세상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안에 있다. 유신론이든 반신론이든 절대자의 실재론적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신은 곧 마음의 여의주로 변한다.

부처 되는 길은 중생의 본능적 이기적 마음을 본성의 자리적 마음으로 되돌려 놓으면 된다고 한다. 납의 마음과 금의 마음이 따로 이원적으로 일심(一心) 안에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아적이면 납이 되고, 무아적이면 그 마음이 금이 된다. 마음의 그 묘용이 바로 여의주겠다. 즉 각자의 타고난 마음을 납에서 금으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각자의 타고난 그 마음이 개성이겠다.

자기의 개성을 납에서 금으로 바꾸면 된다. 개성은 각 마음이 하려는 기호와 능력을 말한다. 기호와 능력은 같이 간다. 그 기호와 능력은 업(業)으로 나타난다. 업의 사회화가 직업이다. 직업을 통하여 소유적 본능의 마음이 작동한다. 최고 숙련의 단계에 이른 직업이 곧 달인(virtuoso)이나 명장(maestro)이다. 그런데 그 타고난 업으로서의 직업을 소유론적 본능의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론적 본성의 나눔을 위한 달인이나 명장의 원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보살도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속의 보살도는 각자의 타고난 업을 통하여 각자의 기호와 능력을 이타행으로 사회화하는데 있다. 이 때에 그 업은 이미 업장의 업이 아니고, 원력의 업으로 치환된다 하겠다. 보살도는 원력의 직업으로서 사회를 구체적으로 구원하는데 있겠다. 지금 우리에게 저 보살도가 필요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