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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화쟁(和諍)사상의 독법

기자명 법보신문
상생-상극의 상존 원리 밝히는게 화쟁의 핵심
변증법 이성의 논리라면 화쟁은 자연의 법칙


원효의 사상을 정확히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짧은 공부에서 가장 어려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 원효인 것 같다. 지나치게 그가 붕 띄워져 신비화된 측면이나, 또 대강 서술되어 엄밀한 법칙으로 그려진 그의 사유가 안타깝게 가려진 경우가 혹시 없는지 자문해 본다. 우리는 그를 흔히 화쟁의 사유인이라 부른다. 화쟁은 문자 그대로 불법의 다양한 관점상의 쟁점들을 모순적 대립으로 보고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쟁점들을 상응하는 관계로서 보게 하는 이법의 발현이겠다. 화쟁의 이법은 상쟁하는 대립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제삼의 인위적인 논리의 구성을 뜻하지 않는다. A와 A'(非A)가 논리적 모순대립의 관계에 있다면, 그 대립을 지양하기 위하여 제삼의 종합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변증법이다.

그러나 화쟁의 사유는 불가양립적인 대립의 해결을 지양하는 논리학이 아니고, 우주의 모든 원초적 사실이 이미 그 자체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의 법칙으로 짜여져 있음을 기술한 우주의 로고스를 뜻한다. 화쟁은 인위적 논리학의 법칙이 아니고, 자연적 우주의 사실을 말한다. 화쟁은 무위법이고 무아의 마음에 조명된 우주적 사실의 자연성을 말하지, 당위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논리학(logic)과 로고스(logos)는 다르다. 전자는 인간의 이성이 구성하는 사유법칙을 말하지만, 후자는 이 우주에 이미 그리고 늘 있어 온 사실의 법을 말한다.

변증법은 인간의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든 이성의 논리학이지만, 화쟁은 우주의 자연이 본디 안고 있는 존재의 법칙으로서의 상관적 차이에 다름 아니다. 상관적 차이는 A와 A'가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공존이 불가능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같이 동거하는 그런 한 쌍의 이중성을 가리킨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다르지만 같이 동시에 성립하는 이중성의 동거고, 삶과 죽음도 서로 다르지만 같이 하나의 양면성으로 성립하는 상관적 차이다. 그러므로 쟁론의 화합으로서의 화쟁은 쟁론을 지양해서 화합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령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적 차이가 서로 하나의 이중적 묶음으로서 존재하는 자연적 무위법의 방식을 지시한 것이겠다. 이런 상관적 차이는 차이가 한 단위로 동거하는 이중성의 사실이요, 법칙이므로 부처님이 설파하신 연기법의 다른 이름이다. 이중성은 일원성도 이원성도 아니다. 그것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관계고, 이것이 화쟁의 다른 이름이다. 원효의 말이다. ‘같음(同)은 다름(異)에 의해서 같음을 분별한 것이고, 다름은 같음에 의해서 다름을 해명한 것이므로, 같음에서 다름을 해명하는 것은 같음을 나누어서 다름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름에서 같음을 분별하는 것은 다름을 녹여서 같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음을 쪼개서 다름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름을 녹여서 같음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같음과 다름은 서로 다른 차이 속에서 한 쌍으로 같이 동거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같음과 다름을 변증법적 모순관계로 보지 않고,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낭만적 통일을 위한 자기 분열로도 보지 않고, 오로지 세상의 근원적 사실이 상생과 상극의 이중성 처럼 야누스적 존재방식으로 성립되어 있음을 밝히는 것이 화쟁사상이겠다. 그러므로 화쟁의 화(和)는 ‘동(同)/이(異)’의 이중성을 하나의 사실로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과 ‘이’를 동시에 읽지 않고, 늘 중생들은 어리석게도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에 다투고 싸운다. 우리는 가장 단순한 사실도 이중적이라는 것을 익히자.

우리는 지금 너무 단세포적인 택일적 발상에 매달리고 있다. 좋으면 좋다고 미치고, 싫으면 싫다고 미친다. 이것이 비화쟁적인 마음이다. 중생이 편견을 어리석은 광기로 인하여 정견이라고 우기면, 거기에 고통의 비극이 생긴다. 혼자만 고통스럽지 않고 남들도 괴롭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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