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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정신희유분 2[br]무량복덕은 세세생생 심어놓은 인연

기자명 법보신문
뜬 구름 흩어지니 만리 하늘은 파란 한 모습
마음 안 출렁이는 망상 가라앉혀 당처를 보라


須菩提 如來 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無量福德

“수보리여,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런 모든 중생은 이와 같이 무량한 복덕을 얻느니라.”

{冶父}種瓜得瓜 種果得果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과일을 심으면 과일을 얻도다.

<보충설명> 무량복덕을 얻는 중생은 인과법에 따라 세세생생 심어놓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뜻입니다.

一佛二佛千萬佛 各各眼橫兼鼻直 昔年 親種善根來 今日 依前得渠力 須菩提須菩提 着衣喫飯 尋常事 何須特地却生疑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천만 부처님이 각각 눈은 횡으로 되어 있고 코는 수직으로 되어 있다. 옛적부터 친히 선근을 심어왔으니 오늘날 앞을 의지해서 그런 힘을 얻었도다. 수보리, 수보리여! 옷 입고 밥 먹는 일상의 일에서 찾아야 하거늘, 어찌 모름지기 별다른 게 있을까 도리어 의심하는가?

<보충설명> 부처님이나 우리나 이목구비의 생김새는 모두 같고, 옷 입고 밥 먹는 일상생활도 다른 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실상의 진리가 깃들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말세에 속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연을 심으면 저절로 결과는 얻어지는 것이니 누구나 갖추고 있는 이 실상의 진리를 일상생활을 떠나 먼 바깥에서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

“무슨 까닭이겠는가? 이런 모든 중생은 다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으며, 좋은 법이라는 생각의 흔적(法相)도 또한 좋은 법이 아니라는 생각의 흔적(非法相)도 없기 때문이니라.”

<보충설명> 말세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신심을 내며 복덕을 구족한 중생들은 금강경을 통해서 四相을 버리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좋은 법이나 좋지 못한 법이라는 분별심도 버리고, 오랫동안 선근을 심어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冶父}圓同太虛 無欠無餘

둥글고 뚜렷함이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도다.

<보충설명> 탁한 물을 가라앉히면 맑은 물만 드러나듯이 四相도 없고, 법상과 비법상도 모두 파기하여 남거나 모자람이 없이 마음이 온 우주에 가득한 것을 원동태허(圓同太虛)라고 합니다. 그리고 圓同太虛는 모두가 한 모습임을 뜻합니다.

法相非法相 開拳復成掌 浮雲散碧空 萬里天一樣

법상과 비법상이여!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을 이룸이로다. 뜬 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흩어지니 만리 하늘이 파란 한 모습이로다.

<보충설명> 주먹을 쥐거나 손바닥을 펴거나 어떻든 모두 내 손인 것처럼, 사상(四相)이니 법상이니 비법상이니 하는 분별을 끊으면 모두가 한 모습이 됩니다. 이런 分別은 하늘을 가리는 구름처럼 진리를 가리지만, 구름이 걷히면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 분별이 사라지면 본래의 진리도 그 자리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 출렁거리는 분별과 망상은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마음을 뿌리로 삼고 있으므로 잘라낼 수 없습니다. 가짜인 분별망상을 가라앉혀 진짜인 당처를 보아야 합니다.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卽爲着我人衆生壽者 何以故 若取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若取非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어떠하겠는가? 이런 모든 중생이 만약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인·중생·수자의 상에 집착함이 되고, 어떠하겠는가? 만약 법을 깨달았다는 상이 남아있다면 곧 아·인·중생·수자의 상에 집착하는 것이요, 만약 그 것 조차 끊어졌다는 생각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라도 (비법에 대한 분별상) 곧 아·인·중생·수자의 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이런 까닭으로 응당 좋은 법이라는 것도 취하지 않아야 하며, 좋은 법이 아니라는 것도 취하지 말아야 하니라.”

<보충설명> 원효대사가 설총에게 착한 일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긴 것은, 법 또는 비법이라는 분별을 탕탕하게 비운 한 모습의 진리를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冶父}金不博金 水不洗水

금으로 금을 바꾸지 못하고 물로는 물을 씻을 수 없도다.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船載月歸

나무를 얻어 가지를 잡았다고 족히 기이할 것 없노라. 벼랑에 매달려 손을 뿌리쳐야 비로소 장부니라. 물이 차고 밤이 싸늘하여 물고기를 찾을 수 없노니, 텅 빈 배에 머물러 달을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보충설명> 벼랑에 매달린 손을 뿌리친다는 것, 물이 차고 밤이 싸늘하여 물고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비법도 취하지 않고 모든 분별의 찌꺼기를 철저하게 제거한 無相입니다. 일체의 능과 소, 법상과 비법상 등이 끊어진 物我兩忘, 獨露眞相의 경지 즉 眞空의 경지입니다. 텅 빈 배에 머물러 달을 싣고 돌아온다는 것은 無住無相의 살림을 유지하면서 지혜의 달빛으로 중생의 구제를 위해 사바세계에 몸을 던지는 보살의 바라밀 즉 妙有입니다. 아무 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탕탕한 한 모습, 천상천하에 홀로 존귀한 진여에서 우러나온 지혜라야 우주적인 광명이 뻗쳐 나갑니다.

以是義故 如來 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여래가 항상 설하기를 ‘그대들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같이 알라’ 하였으니, 옳은 법도 오히려 응당 버려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옳지 않은 법을 버리지 않겠는가?

<보충설명>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설법에 관하여 물을 건너 갈 때는 필요하지만 물을 건너면 버려야 하는 뗏목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사바세계인 이 언덕에서 열반의 세계인 저 언덕으로 물을 건너가면 부처님의 설법은 필요 없게 됩니다.
또 많은 禪師들도 부처님의 설법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따라 수행하여 어둠을 밝히는 달을 보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좋다고 하여 손가락에 매달려 있는 것은 마치 금이 좋아서 금가루를 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금이 좋다지만 눈 속에 금가루를 넣고 다닌다면 눈병이 난 상태로 사물을 관찰할테니 사물을 여실히 관찰할 수 없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세에 태어나더라도 금강경을 듣는 사람은 과거생에 선근을 심은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모두 알아보고 이끌어주니까, 무주의 마음으로 육바라밀을 수행하라고 권유하십니다. 四句偈의 뜻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실상을 체득하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 열반 후의 시대에 살지만 법과 비법 등을 떠난 올바른 신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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