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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안목은 세상을 맑히는 청정수

기자명 법보신문
신 규 탁
연세대 교수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선지식들이 배출되어 불교계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 한국 불교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스님으로는 임제선사와 조주선사, 백장선사, 마조선사 등이다. 이 분들은 뒷날 송나라시대는 물론 명·청 시대를 거치면서 선불교의 역사 속에서 더더욱 존숭되어갔다. 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문서의 중압감과 전통의 무게 속에서 자신감을 잃어가던 수행자 자신들에게 철저한 수행과 자신감 등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조주 스님의 다음과 같은 일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던져준다.

잘 알려진 바대로 조주 스님의 법명은 그가 살던 지역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가 살던 조주 땅은 당시 조왕(趙王)이 통치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하북 지역에서 세력을 펼치고 있었던 연왕(燕王)이 이 땅을 넘보고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 그런데 연왕의 참모들이 조주 땅에는 성인이 살고 있으므로 그곳을 공격했다가는 화를 입을 것이라고 진언을 올린다. 그러면 어떤 성인인 살고 있는가를 탐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이렇게 아뢰었다. “화엄경을 강의하는 큰 스님이 계시는데 큰 가뭄이 들더라도 만약 그 스님이 오대산에 가셔서 기도를 올리면 큰 비가 내립니다. 바로 그 어른이 성인입니다.” 이 말을 듣자 연왕이 말하기를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 않군.” 또 다른 사람이 아뢰었다. “여기서 120여 리 가면 조주 관음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선사 한 분이 살고 계신다. 그 분은 나이와 승랍이 높고 도를 보는 안목이 밝습니다.” 그러자 연왕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그 어른이야말로 참으로 성인이시다고 하였다. 그 결과 연왕은 조왕과의 무력 충돌을 멈추었다.

이상의 이야기는 『조주록』의 ‘행장’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계의 선종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읽을 수 있다.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신통력을 높이 치기보다는, 도를 보는 안목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고 있다. 신도들의 병을 고쳐준다던가, 미래를 점쳐준다던가, 기적을 일으킨다던가 하는 일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야 불교도 종교의 하나인데 어찌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일이 없었겠는가마는, 종문에서 귀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런 신통묘용은 아니었다. 불교를 제대로 수행한 사람의 인생살이가 세상에서 말하는 부귀영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드는 삶을 살아간 이는 바른 안목을 갖게 됨은 분명하다.

조계종의 최고의 행정수반인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돌아가셨다. 그 분의 죽음을 보내는 곳에서 하늘에 일원상이 나타났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조계의 선종에서는 바른 안목을 귀히 여기는데, 어찌 일원상이 나타난 것에 초점이 맞추어질까? 오히려 그 분이 조계의 자손이라면 그를 칭송함에 그 어른의 바른 안목을 세상에 알려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간에는 승려의 죽음을 접하면서 사리의 출현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조계의 정통을 지켜왔던 선사들은 그런 것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조주 스님은 세연을 마치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태워버리되 사리를 골라 거두지마라. 종사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 다르다.” 법장 스님의 열반을 놓고 세상 사람들이 일원상의 출현에 주목하는 것을 본인 자신이 알았더라면 과연 반갑게 생각했을까? 일원상의 출현이 그분의 덕행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신비스런 것에 치우치다보면 조계선풍의 바른 안목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보여질까하는 염려가 생긴다. 그 분의 도에 대한 바른 안목이 귀한 것이고, 그런 안목이 세상의 더러움을 맑히는 청정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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