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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종교적 광기가 모든 악견의 원천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의 선악은 세상 보는 마음 상태 의미
선 의지도 고집하면 탐욕이며 악이 될 뿐


세상은 선악으로 나누어져 심판되곤 한다. 우리가 비록 불자라도 학교의 도덕시간과 사회의 매스컴에 의하여 선악을 이분화해서 실재론적인 것으로 여기는 습관에 많이 익숙하게 길들여져 왔다. 우리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증오하는 주체가 되기를 종용받아 왔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선악관을 망상이라고 본다. 내가 아는 한에서 오직 불교만이 세상의 선악을 실재론적으로 인식하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마음이 스스로 내는 생각의 방향으로 깨닫게 한다고 여긴다. 악을 불교는 대부분 번뇌로 표현한다.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에 의하면 인간의식(제6식)은 11개의 선의 마음가짐과 26개의 번뇌의 마음가짐으로 나누어진다. 26개의 마음가짐은 또 6개의 근본번뇌와 20개의 지말번뇌로 구분된다. 6개의 근본번뇌는 탐진치 삼독에다가 잘난 척 하는 교만(慢)과 정법을 불신하는 의심(疑)이외에 마지막 악견(惡見)이라는 개념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이 악견에는 또 5개의 마음가짐이 있는데, 신견(身見=자아중심의 견해), 변견(邊見=자아중심적 외곬의 택일적 견해), 사견(邪見=자기 외곬의 생각이 정견이라고 여기는 견해), 견취견(見取見=자기의 견해가 정견이라고 고집하는 견해), 계금취견(戒禁取見=자기의 고집스런 견취견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치기준의 고집) 등이 있다. 여기서 20개의 지말번뇌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불교의 선악관은 외부에 있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도덕적 선악을 분별하고 호오(好惡)로 심판하여 선을 일으키고 악을 징벌하는 것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마음의 견해가 세상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평케 하느냐, 아니면 마음에 삼독의 고통과 괴로움을 동반하는 마음가짐을 초래케 하는가 하는 것으로 선악관을 세운다. 세친이 가르친 선악관을 한번 더 성찰해 보자. 선악은 외부에 어떤 것으로 실재하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을 취득하고, 악을 징벌하든가 수리하면 된다. 실제로 인간들은 그 동안 역사 안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선을 소유하고 악을 타기하는 행동을 엄숙한 혁명의 이름으로 가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이 좋아지기는커녕 선의 이름으로 새로운 악이 생겨 역사를 늘 뒤틀리게 만들었다.

선을 돋우고 악을 제거하려는 역사(役事)가 낡은 집 수리하듯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은 그 동안 도덕주의의 고집으로 깨닫지 못하고 마냥 밀고 나갔다. 이제 세상은 선악처럼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 선을 고양하고 악을 일소하겠다는 도덕주의적 마음이 반드시 선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세친이 가르친 선악은 마음의 견해에 의하여 좌우된다. 마음이 세상을 좋게 뜯어고치겠다는 선의지적 소유의 탐욕이 뜻과 같이 안될 때 화가 생긴다. 화가 일어나면서 더욱 세상을 선으로 일신하겠다는 고집이 강해진다. 강한 고집은 광기의 어리석음으로 뭉쳐진다. 광기의 어리석음은 애증(愛憎)의 골을 깊이 판다. 선의 집념이 악의 광기로 변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선의 화신이라고 교만을 느끼고, 자기 편이 아닌 세력은 쓸어야 할 악의 찌꺼기로 여긴다. 그런 신견의 아상이 굳어지면서 자기편과 반대편의 변견이 일어나고, 그 변견이 정견이라고 우기는 사견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자기 견해를 절대진리로 착각하는 견취견이 솟아난다. 그 견취견은 이미 만인이 따라야 할 행동가치의 준거로 변하면서 계금취견의 깃발을 휘두른다. 대중적 선의 깃발을 미친 듯이 흔들지 않는 악의 무리가 이 세상에 없었던 것 같다.

종교와 정치가 그런 깃발을 미친 듯이 흔들수록, 그것이 세상과 인간들에게 번뇌의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다 언필칭 선을 위한 일이라 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종교와 정치가 세상을 울렁거리게 한다. 불교적 선악관은 마음가짐을 중시한다. 세상을 진정시키면 마음은 여래장의 씨앗을 자발적으로 꽃피운다. 종교적 정치적 광기가 모든 악견의 원천이 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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