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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귀동사적 인과법과 타동사적 인과법

기자명 법보신문
창조론은 대상에 대한
지배구조 정당화 시켜

불교적 인과 관점에서
자연은 나와 같은 존재


내가 불교로부터 배운 큰 철학적 진리가 있다. 그 진리는 타동사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자동사적이거나 재귀동사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타동사적인 세상보기는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여 주관이 바깥에 놓여 있는 객관을 만들거나 영향을 미쳐서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자동사적이거나 재귀동사적인 세상보기는 주어가 다른 목적어에게 타력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어의 행위나 생각이 스스로 생기하거나 또는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불교의 인과법은 서양 철학과 신학이 말해 온 인과법과 다르다. 서양의 인과법은 타동사적 인과법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인과법은 대표적인 타동사적 인과법이다. 신은 전지전능해서 세상을 무(無)로부터 창조했다는 것이고, 인간은 그렇지 못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에 바탕해서 다른 어떤 것을 제조한다는 것이다. 창조와 제조의 차이를 서양철학은 강조하나 그것은 비례의 차이에 불과하다. 창조나 제조는 다 신과 인간이란 인격중심의 생산론이다. 그런 생산론이 극단화되면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는 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20세기 독일의 현대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가 서양의 과학기술의 형이상학적 근거가 서양신학이라고 말한 것은 탁견이라 보여진다.

타동사적 인과론은 원인에서 결과에로 직선적으로 하강하는 비가역적(irreversible) 인과론이다. 즉 결과는 늘 원인에 비하여 등급이 낮고 인과론의 시작과 종말이 분명해서 종말인 결과가 절대로 시작인 원인에로 재귀하지 않는다. 이런 인과론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은닉시키고 있다. 창조론과 제조론적 인과론은 제품 생산론의 성격을 지니므로 원인이 늘 결과를 소유하는 주인의 권리를 향유한다. 그러나 불교적 인과론은 자기 바깥에 결과를 창조하거나 제조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불교적 인과론은 자기가 행위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변화하는 자기 존재를 말할 뿐이다. 서양 전통철학에서 존재와 생성의 변화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해 왔지만, 불교에서 존재와 생성은 동일한 것이다. 인과응보라는 뜻은 원인과 결과가 서로 상응한다는 인과론이고, 원인이 결과로 또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순환적으로 되돌아가는 가역적(reversible) 인과론이다.

결과의 과보가 원인의 존재양식을 새로 변화케 하므로 불교의 순환적 인과론은 기계론적 제조론의 의미가 아니라, 유기체적 공명론의 의미로 읽어야 하겠다. 제조적 인과론에서는 주종(主從)관계가 상하로 정립되는 소유론이지만, 공명적 인과론에서는 능소(能所)관계가 상호왕래하는 존재론이다. 비가 내려 바다를 이루니 비가 능동이고 바다가 수동이나, 바다가 증발하여 비를 이루니 바다가 능동이고 비가 수동이다. 능소가 교대로 순환한다. 존재론은 자연처럼 만물의 존재방식이 주고받는 왕래의 교환방식을 뜻한다. 불교처럼 재귀동사적 인과론으로 세상을 보는 까닭은 세상과 우주를 지배대상으로 바라보는 주인이 없고, 우주의 모든 사실과 현상을 다 일심(一心)의 자기 운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타동사적 세계관은 주관과 능동, 객관과 수동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우주는 에너지(氣)가 스스로 승강비양(昇降飛揚)하는 운동의 존재방식이라면, 모든 인과법은 에너지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자아내는 에너지의 변화에 불과하다. 그 불생불멸하는 우주의 에너지는 마음의 에너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꽃을 보면 마음도 꽃이 되고, 장엄한 폭포를 보면 마음도 그렇게 된다. 우주법계가 일심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자연적 에너지가 정신의 에너지와 다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겠다. 자연의 좋은 에너지는 마음의 좋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의 사악한 에너지는 자연에게도 사악한 에너지로 전이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열광주의적인 사상의 에너지가 심하게 편집광의 증세를 일으키고 있다. 그 증세는 현재완료형으로 남아있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업(業)으로 우리에게 다시 재귀되는 것이 아닌가 무척 두렵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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