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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묘향산 상원동 등반(下)

기자명 법보신문
구름안개 피어나는 이곳은 신선이 사는 경지로다

초입 안심사 서부도엔 6·25상흔 남아

금강굴 지나면 세속의 차별은 사라지고


묘향산 등반을 앞두고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을 등반하게 된다는 설렘도 있지만, 밤새 내리는 눈으로 혹시 등반이 어렵지나 않을까라는 조바심 탓이 더 크다. 게다가 북한의 전력난으로 향산 호텔의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춥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밤잠을 설치며 연신 창밖을 살폈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으련만 저놈의 눈은 그치지 않고 하염없이 내린다.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눈발이 가늘어지더니 가까스로 그쳤다. 휴-. 이윽고 아침 식사 시간. 아니나 다를까. 눈길이 매우 위험하니 등반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는 주장이 나온다.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고 대세를 따르겠다는 표정을 한 이도 있다. 자칫 묘향산 등반의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다. 할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상원동 초입의 안심사터에는 서부도가 있다. 이곳은 한 때 동방제일의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이번에 묘향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요. 더구나 우리 평불협 대표단의 방북 목적이 북 사찰의 단청현황 조사인 만큼 유서 깊은 상원암을 살펴보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됩니다. 정 어려운 분은 그만두더라도 올라갈 뜻이 있는 분들만이라도 등반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돌하게 보일 수도 있는 발언인데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흔쾌히 동조를 해준다. 눈이 덮혀있는 길이 외려 덜 미끄러울 수도 있으니 일단 올라가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져 일행 모두가 등반을 강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코스는 묘향산의 북쪽 법왕봉으로 향하는 상원동 등반길. 초입부터 절반가량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편이지만 그 뒤부터는 인호대(引虎臺), 법왕대(法王臺) 등의 준령이 줄지어 있고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천신폭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란다. 그러나 보현사에서 여러 해 동안 안내를 맡고 있는 경험 많은 안내도우미 김영숙 보살의 인도를 받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상원암 코스의 초입에는 안심사 터가 있다. 서부도라고 불리는 부도 밭에 41개의 부도와 비석 14개가 남아 있는데, 흰눈에 덮인 탑비의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다. 아무래도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서산, 나옹 스님의 부도를 매만지며 느낀 처연함 때문일 터이다. 어쨌거나 옛날 한 때 동방 제일의 고찰이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으니 무상의 이치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등반길 초입에 서 계곡의 상류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 선인들의 묘향산 예찬이 떠오른다.

'천지 개벽하고 산천이 생겨시니/ 오악은 조종이요 사해난 근원이라/ 백두산 일지맥이 동으로 흘러나려/ 묘향산 되여시니 북방의 제일이라/ 일국지 명산이요 제불지 대찰이라'

<향산록>에 나오는 묘향산 묘사다. 북방 제일의 명산으로 보현사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있음으로써 제불지 대찰임을 이 기록은 밝히고 있다. 작자는 예서 더 나아가 이런 구절을 남긴다. '선인의 조각인디 인간제조 아니로다.'

상원동 어귀에서 800미터가량 오르면 등산길에 상원문이 나타난다. 커다란 바위가 굴러 내리다가 만들어낸 일종의 바위터널인 셈인데, 이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금강문이 나타난다. 금강, 즉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서는 문이란 뜻으로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바위굴 역시 허리를 구부리고 빠져나가야 하는 데, 그런 연고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한 평생 갓 쓰고 가마타고 거들먹거리며 남에게 허리 한번 굽혀본 일이 없는 양반들도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해야 상원동의 경치를 보여주었다는 전설이다. 금강의 경지에 신분과 반상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평등의 메시지가 이 문에 담겨 있음이다.

상원동 입구에서 1.5킬로미터 가량 오르면 이름처럼 아름다운 금강폭포가 반기고, 그 옆으로 봄날 물오른 처녀들의 화전놀이터였던 금강루가 나온다. 예서 더 오르면 수십 미터 높이의 층암절벽 학소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묘향산이 이루어지던 먼 옛날 지각변동이 이루어지면서 용암이 솟구쳐 만들어낸 장관이거니와 그 아래 계곡이 이뤄낸 경관은 가히 경탄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금강폭포에서 1킬로미터쯤 더 올라가면 대하폭포가 나오는데 인호대(引虎臺) 밑에 있는 폭포라고 해서 그 이름을 대하라고 했다. 높이가 11.6미터, 길이가 22.7미터에 이르는 제법 큰 규모다. 늘 물이 많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지만 흰 눈으로 덮인 터라 수량을 제대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대하폭포를 지나면서 등산길은 경사가 급해진다. 그런대로 지금까지는 눈길을 잘 걸어올라 온 일행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비틀비틀, 넘어지는 이도 있고, 구두를 신은 이경철 불자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넘어질 듯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서 가파른 등산길을 따라 200미터를 더 올라가면 묘향산이 자랑하는 장관인 용연폭포와 산주폭포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가 각각 84미터, 30여 미터에 달하는 대형 폭포인데, 한 겨울인데도 제법 많은 수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름처럼 용연폭포는 마치 성난 백룡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형국이고, 산주폭포의 흩어지는 물방울은 영락없는 구슬 알 모양이다.

거대한 바위 위로 난 눈 덮인 등반길을 보조 철줄에 의지해 가까스로 오른다. 반들반들 얼음이 얼어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큰 부상을 당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저 작은 체구의 김영숙 보살은 어찌나 몸이 가볍고 날랜지 차라리 산 다람쥐라고 해야 할 듯싶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눈길을 비틀비틀 오르면서도 그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일행들은 다투어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이곳은 묘향산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라더니, 과연 대단한 장관이다.

용연폭포 위가 인호대인데, 이름대로 호랑이와 연관된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용연폭포를 올려다보며 그 왼편 측면으로 약 500미터쯤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 길이 하도 위험해 호랑이가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을 낳았으니 그 가파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느 날 용연폭포 앞까지 다 달은 나무꾼 총각이 산으로 더 오르려고 했으나 길을 찾지 못해 헤맬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다는 것인데, 전설을 입증이나 하듯이 가파른 바위길 표면에 호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발자국을 따라 한발한발 오르다보면 수백길이 넘는 벼랑 끝, 인호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인호대에는 몇 그루의 노송과 잘 어우러진 정자, 즉 인호정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다보는 폭포의 절경이 묘향산 팔경 중의 하나인 인호관폭(引虎觀瀑)이다. 이럴때 용호상박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절경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으니, 오늘은 그냥 선경(仙境)이라고만 하리라.

인호대로 오르는 가파른 바위틈길. 바위 표면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조선의 4대 명필로 알려진 양사언도 이곳에 와서 경관에 감탄해 용연폭포 계류반석 위에 그 감동을 시구로 적었으니, '구름 안개 피어나는 이곳은 신선이 사는 경지로다(神仙堀宅雲霞洞天)'이다.

평소 시를 즐겨 짓고 쓴다는 김영숙 보살에게 오늘 남쪽에서 온 불자들과 함께 한 상원동 등반의 감회를 시로 적어보라고 하니, 예상 밖으로 흔쾌히 응한다. 즉석에서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솜씨의 시는 이렇다.

'오늘 스님들과 나는/ 7천만 겨레가 함께/ 묘향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그날로 가고 있어라!'





묘향산 상원동=이학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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