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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자유론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의 자유는 세간 잊은 마음 아닌
마음 근원 그대로 보는 ‘비어 있음’


불교의 자유론은 서구의 사상과 좀 다르다. 서구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를 불가양도적(不可讓度的)인 기본권리로 보고 있다.

사회적 원자로서의 개인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겠다. 이런 개인주의적 자유론의 근거에는 오랜 서구 사상의 전통인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정의가 깔려 있다. 인간은 동물이되 이성이 첨가되어 그 이성이 인간의 불가양도적인 존엄성의 핵심이므로, 이성의 생각과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

이런 논리적 인간론을 회의하고 인간의 자유를 좀 더 구체적 삶과의 관계에서 보려는 철학적 사유가 현대에 와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의하여 크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보는 철학이 인간의 존재양식을 근본적으로 꿰뚫어보지 못하는 소유론적 형이상학의 결과라고 여기면서 인간을 ‘던져진 존재’ 규명했다. 세상에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인간존재가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 한계상황으로 보는 철학과 같다. 인간은 세상 안에서 갇혀 산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상은 객관적으로 내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의 자기 투사에 다름 아니다. 즉 세상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이 바깥으로 투사하는 불교의 유식학적인 상분(相分)과 같다. 즉 인간이 자기 마음에 던져졌고 거기에 갇혀 사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이성을 개인적 주체의 본질로 봐서 그 개인을 사회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자유론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런 개인주의적 자유론은 이성주의와 이기주의의 합작품이다. 그런 자유론은 개인적으로 이성이 세상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형이상학의 발로다. 거기서 자유는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위한 개인의 권리를 말한다. 거기에는 인간존재의 근원적 자유에 관한 물음이 없다. 불교와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인간은 이미 세상인 자기 마음에 던져져 갇혀 있다. 인간은 그의 한계상황인 마음의 포로이거나 노예로 존재한다. 자유는 이 근원적 상황의 포로나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불교의 옛 가르침을 새롭게 한다. 마음 즉 세상의 근원적 상황은 인간이 수리하거나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거기서 자유스러운 길은 마음이 스스로 소유론적 생각을 존재론적 생각으로 회심(回心)하는 길뿐이다.

그런 회심의 길은 해탈을 향하여 걸어가는 마음의 길닦기이겠다. 해탈의 길이 불교적인 자유의 길이다. 이 자유를 하이데거는 ‘마음의 비어 있음’(das Offene)과 다르지 않는 존재론적 사유라고 언명했다. ‘비어 있음’이란 한국어가 좋다. 영가현각 선사가 말한 ‘무가 무 아니고 유도 유 아님’(無卽不無 有卽不有)이 한국어의 ‘비어 있음’이겠다. 마음의 ‘비어 있음’이 불교적 의미의 자유요, 해탈이다. 마음의 ‘비어 있음’은 마음이 감옥과 같은 상황을 벗어나는 자유화의 뜻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해탈의 자유화를 출세간적 마음이라 하여 세간을 전혀 잊어버린 비현실적 마음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보통 불교의 지혜를 출세가적이라 하여 세속을 버린 지혜로 착각한다. 출세간적이라는 말은 소유론적 세간을 떠난 존재론적 세간의 의미를 가리키지, 세속을 버린 지혜를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10대 명호 가운데 하나가 세간해(世間解)(세간을 잘 이해하는 분)가 아닌가? 불교적 자유의 뜻은 마음이 짊어지고 괴로워하는 일체의 소유를 놓아버리라고 하는 뜻으로서의 무애심인 만큼, 그것은 불가양도의 개인적 권리의 존엄성이 아니다. 불교적 평등론이 소유적 대등론이 아니듯이, 불교적 자유론은 소유적 권리론이 아니다. 이 권리론은 아상을 더욱 강화시켜 인간의 마음을 상황 안에서 더욱 옥죄이게 할 뿐이다. 불교사상은 현실적 소유론도 이상적 당위론도 아니고, 마음과 세상의 근원적 존재방식을 그대로 보게 하는 사실론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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