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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구인은 불교를 어떻게 봤을까

기자명 법보신문
  • 해외
  • 입력 2005.11.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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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종교사학자 오퍼만 교수 논문 ‘화제’

“동성애 즐기는 무신론 집단” 등으로 왜곡

중세 서양인들에게 처음 불교가 유입됐을 당시 그들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스웨덴 룬드대학 종교사학자 주르겐 오퍼만 교수는 불교전문논문집 『글로벌 부디즘』 2005년 겨울호에 「유럽에서의 불교 수용 초기단계: 무신론, 정적주의(靜寂主義) 그리고 남색(男色)에 관한 논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16세기 선교사들에 의해 불교를 처음 소개될 당시부터 19세기 후반 본격적인 불교 연구에 이르기까지 중세 유럽인들의 불교에 관한 의식 변화를 다루고 있는 이 흥미진진한 논문을 요약 보도한다. 편집자


16세기경 처음 불교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중국과 일본 등지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떠난 선교사들의 편지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동양 사회에 뿌리깊게 내린 불교와 유교의 장벽을 넘어야만 기독교를 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도의 관점으로 불교와 유교를 공격했다.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심취한 이들의 눈에 비친 불교는 온갖 잡신들을 섬기면서도, 인간과는 분리되는 절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 내지 이단에 다름 아니었다.

중국에 도착한 예수회 신부들의 현지에는 중국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 설명돼 있다. 공자의 유교를 신봉하는 이들은 부처라는 존재 또한 절대적인 인간의 완성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선교사들은 이들을 이교도, 범신론자, 혹은 무신론자로 표현했다.

1564년 개신교 목사 피에르 비레트는 “하나님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라고 동양인들을 설명했다.

1549년 일본 규슈 가고시마 땅에 첫 발을 내디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신부(1506∼1552)의 편지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기독교 교의에서 가장 놀랐던 점 가운데 하나는 신에 의한 천지창조설이었다고 한다. 신에 의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기독교 천지창조설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획기적인 사상이므로 많은 일본인들이 이에 경도되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사비에르 신부는 일본의 불교가 석가모니나 아미타여래에 의해 설파된 것으로, 그들은 그 신비적인 생애로 보아 인간이 아니라 악마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일본의 선불교 교설을 영혼의 단멸로 설명했다. 그리고 여러 경전에서 소개된 ‘극락’에 관해 불교도들이 매우 물질적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 비구와 비구니가 계율을 주장하면서도 실은 대단히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사비에르 신부는 설명했다.

사비에르를 비롯한 여러 수도사들은 승려집단이 매우 성적으로 문란하며, 특히 비구들은 남색을 즐기는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세 서양에서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는 부정되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철저하게 금지됐는데, 더구나 승려의 동성애는 그들을 도덕적·교리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였던 것이다.

이후 17세기 서구의 선교사들은 불교를 정적주의(靜寂主義)로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들이 중국과 일본에 도착할 당시 선종이 불교의 주류였으므로 이들은 그 선정(禪定)의 단계를 ‘영혼의 단멸’로 설명, 불교를 정적주의로 표현한다.
정적주의는 기독교에서 인간의 자발적·능동적인 의지를 최대로 억제하고, 초인적인 신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수동적 사상으로, 17세기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정적주의자들은 기독교도로서 흠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오직 죄악과 싸우는 행위에 있다기보다는 자기를 완전히 하느님에게 맡겨 이뤄지는 영혼의 정적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교황 이노켄티우스 11세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돼 철저하게 배격되고 있었다.

동양의 선불교를 접한 선교사들은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정적주의와 선불교의 ‘선정 단계’가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에 주목, 불교를 일종의 정적주의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근세로 접어들면서 서양의 낭만주의자들은 동양에 대한 무차별적 열광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점점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돼 가던 이들에게 ‘인도’와 인도에 원류를 두고 있는 불교는 ‘신비주의적’인 동양 사상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불교의 이해가 기독교 선교사들의 민속지 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서양의 근대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라이프니츠, 헤겔, 쇼펜하우어와 같은 학자들은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학문적인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에 충실한 이들의 철학체계에서 불교를 원시적인 단계의 종교로 설명했다. 특히 헤겔은 그의 저서 역사철학에서 불교를 가장 낮은 형태의 종교로 규정했다.

불교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이 점차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불교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세기말 일본 스즈끼 선사의 선사상이 유입되면서 유럽에서는 선불교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가 가능해졌고, 20세기 달라이라마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는 점차 신앙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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