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오〈중〉

기자명 법보신문

하느님은 사람이 창조했느니…

<사진설명>금강산 장안사에서 정진했던 금오 스님은 선기 넘치는 선승으로 추앙 받았다. 사진은 옛 장안사 전경.

우주 창조는 언제 된 줄 아는가?

금오 스님이 태백산 각화사 토굴에서 한 철을 지내고 금강산 장안사를 향해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이라 오고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대사! 여보시오 대사!”
금오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웬 양복장이 신사가 손가방을 흔들며 금오 스님을 향해 좇아오고 있었다.
“나를 부르신 겁니까?”
그 사나이가 가까이 오자 금오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아 이 깊은 산중에 스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요?”
“허면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다는 말씀이시오?”
“아 그야 깊은 산길을 혼자 가느니 말벗이라도 하면서 같이 가자, 그런 말씀이지요?”
“아 예...”
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뒤, 금오 스님은 그 사나이와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헌데 말씀이에요 대사님.”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대사님 하고 나하고 이야기 한번 겨루어 보실까요?”
“예에? 이야기를 겨루어 보자니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느닷없이 이야기를 겨루어 보자는 말에 금오 스님은 어이가 없어 사나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대사께서는 이 우주가 창조된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뭐요? 이 우주가 창조된 지 몇 년이나 되었느냐?”
“그렇소. 어디 한번 대사께서 말해보시오.”
원 참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다 생각하면서 금오 스님은 묵묵히 걸음만 내딛고 있었다.

“우주가 창조된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대사님은 모르시는 모양이지요?”
금오 스님은 어이가 없어서 걸음을 멈추고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 우주를 누가 창조했다는 이야기 같은데, 대체 어느 누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게요?”
“아 그야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창조했지요.”
“허면, 그 하느님은 또 누가 창조했는데요?”
“하느님을 누가 창조합니까? 하느님은 그 전부터 저절로 계셨지요.”
“틀렸소이다!”
사나이는 따지듯 덤벼들었다. 스님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 하늘에 하느님이 있을 것이다 하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해서 생겨난 것이 하느님이니, 하느님이야말로 사람들이 창조한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안 그렇소?”

우주 창조 5분도 안돼

“에이끼 여보슈! 대사가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지 그렇게 얼렁뚱땅 하느님을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둘러 붙이면 되겠습니까?”
자칫하면 산 속에서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금오 스님은 손을 저으며 잘라 말했다.

“자 자 그만. 허면 이번엔 댁의 이야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그래 댁은 우주가 언제 생겼는가 아신다 그 말이오?”
“암, 알구 말구요.”
“허면 몇 년이나 되었다는데요?”
“이 우주가 창조된 지 꼭 39년이나 되었지요.”
“허허허... 39년이라... 당신 나이가 서른아홉이다 그런 말이로구먼. 응? 허허허허....”

전광석화까지 스님이 그렇게 정곡을 찔러버리자 그 사나이는 할 말을 잃은 채 스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스님은 내친 김에 그 사나이를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이것 보시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선생과 나 사이에 우주가 창조된 것은 이제 5분도 채 못 되었소. 아시겠소?”

그 사나이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빈정거리던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정색을 하고 예를 갖추어 금오 스님께 사죄를 올렸다.

“몰라 뵙고 결례를 했으니 용서하십시오.”
21세기 대명천지 밝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하철 역 근처나 시장부근에서는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정신 나간 피켓을 들고, 자기 종교만 제일이고 남의 종교는 우상숭배라고 헐뜯고 다니는 얼빠진 족속들이 날뛰고 있다.

금오 스님이 젊었을 적에도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몰아붙이는 얼빠진 족속들이 수없이 많았다. 특히 스님들이 먼 길을 가기 위해 기차라도 타게 되면, 스님에게 시비를 걸고 비아냥거리는 족속도 있게 마련이었다.

1930년대의 어느 여름날. 금오 스님이 기차를 타고 김천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비좁은 객차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맞대고 함께 있는데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 사내가 스님께 넌지시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잘 모르긴 하지만, 나무토막을 깎아서 불상을 만들어 놓고 그 불상 앞에 절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선생은 서양종교를 믿고 계시는 모양이구먼요?”
“그렇소이다.”

당신은 잔디에게 인사 드리는가?

“허면, 선생은 조상 산소에 성물도 안 하시오?”
“서양종교를 믿긴 하지만 성묘는 합니다.”
“허면, 조상 산소에 성묘 가서 인사도 올리십니까?”
“그야 물론 인사도 올립니다.”
“허면 선생은 흙에게 인사를 올리십니까, 잔디에게 인사를 올리십니까?”
“그야 조상님의 은덕을 생각하며 조상님께 인사를 올리지 왜 흙이나 잔디에게 인사를 올리겠습니까?”

“우리는 부처님의 은덕을 생각하고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지, 나무토막에 인사를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인사를 올릴 적에 종이쪽지에 인사를 올리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 그건 제가 잘 몰랐구먼요.”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허나 모른다면서 함부로 혓바닥을 놀려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면 그것은 큰 죄를 짓는겝니다.”

그 사내는 그만 얼굴이 벌겋게 되어 자리를 뜨고 말았다. 유식한 척 스님을 망신시키려다 오히려 자기가 큰 망신을 자초했던 셈이었다.

윤청광(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