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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단상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 주장하는 정의는 늘 ‘편파적’
정의 이름으로 전쟁 사라진적 없어


나는 불교가 복락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복락케 하는 길은 세상을 심판하는 일을 중지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언뜻 수용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세상에 악행을 일삼는 가증스런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이들을 심판하지 말라니 세상의 일이 뒤죽박죽으로 되지 않겠는가 하고 분노가 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정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의는 악에 대한 심판과 징벌을 뜻한다. 사기꾼도 사기꾼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싫어하니 모두 다 악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악이 무의식적으로 싫어서 나오는 마음의 반작용이겠다. 모두가 다 정의를 외친다.

그 소리의 강도만큼 아전인수격으로 각자는 마음의 호오에 따라 제각기 정의를 요구한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정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객관적 기준? 이것은 주관적 감정의 호오를 떠나 만인이 동의하는 기준을 뜻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 논리에서 가능하나 구체적인 심리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중생은 각자의 마음에 이미 새겨진 각자의 색깔 따라 정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는 색깔이 무슨 색인 줄 모르고 무색 투명하다고 우기면서 중생은 객관적이라고 논리를 내세운다. 이런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정이 통하는 이들끼리 붕당을 만들어 세력화한다. 정의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세상은 국가간, 사회세력간, 개인간, 정의의 이름으로 다툰다. 결국 실정법이외에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 그 법도 사람들의 심리적 호오와 논리적 정의감이 가미된 절충의 선택이다. 실정법도 판사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적잖게 일어난다.

정의의 종교도 이와 비슷하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악이 싫어서 아전인수격으로 주관적 정의를 주장하면서, 추상적으로 영원한 정의의 신이 객관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인간의 도덕적 상상을 반영한 것이겠다.

그런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왜 이 세상에 불의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가 하는 심대한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대서양의 반신론의 주장처럼 신이 세상에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물음 앞에서, 영원한 판관으로서의 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신의 개념이 변해야 한다.

최고 심판관으로서의 신으로부터 선악과 시비 이전의 무선무악(無善無惡), 무시무비(無是無非)의 마음 자체인 지선(至善)의 복락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신을 읽어야 한다.

정의의 심판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도, 심리적으로 그 기준에 앙앙불락하는 마음의 앙금을 녹이지 못한다. 불교가 ‘義’자를 ‘정의’의 뜻으로 잘 쓰지 않고, ‘의미’의 뜻으로 사용하는 깊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늘 중생이 주장하는 정의는 편파적(partial)이고 부분적(partial)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의의 이름으로 송사와 전쟁이 사리진 적이 없었다. 무선무악의 지선에서 보면, 정의를 위한 논쟁보다 모두를 다 이익되게 하는 복락이 세상을 더 평화롭게 한다. 정의는 세상을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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