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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천송반야경』 ⑩

기자명 법보신문

무조건 베푼다고 다 공덕 아니다

아마도 불교사상에 있어서 가장 종교다운 실천 덕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보시일 것이다. 보시란 ‘내 것을 남에게 베푼다’는 의미이다. 이는 소승이나 대승을 막론하고 줄기차게 강조되는 덕목 가운데 하나로서, 아마도 선정과 더불어 불도 수행에 있어서 2대 덕목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불교신자라면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보시란 베푸는 일인 만큼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팔천송반야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 보시에도 그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이 역시 반야이다. 팔천송반야에서는 베풀되 먼저 지혜의 빛을 일으키라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에 의해 인도될 때 비로소 결함 없이 베풀고 지치지 않고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야에 인도되는 보시란 무슨 의미일까?

이제까지 거듭 설명해 왔듯이, 팔천송반야에서 말하는 반야란 그 어떤 행위에 앞서 갖추어진 마음이다. 이 반야의 마음을 기반으로 선(禪)에 들기도 하고 청정[戒]을 행하고 보시를 베푼다. 나아가 이렇게 해서 한층 더 숭고해진 마음이 자신에게 또 다른 차원의 지혜의 등불, 곧 반야가 되어 주는 것이다.

베풂을 선근(善根)으로 만들려면 적어도 어떤 마음의 기반이 필요하다. 곧, 보시가 아무리 숭고한들 무조건 베푼다고 해서 그 것이 다 공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반야에 인도된다 함은 베풀되 받는 자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라는 뜻이다.

보시 앞서 지혜의 빛 일으켜야

그를 위해 베풀거늘 다시 그의 행복을 생각해 보라니, 아마도 의아해 할 분도 있으리라. 하지만, 대개는 아무생각 없이 베풀기 마련이다. 실제로 상대를 진정 위해주겠다고 마음먹으면 섣불리 동전하나 던져주기 어렵다. 그로인해 그가 더 게을러지지 않을지, 나쁜 습성이 더 굳어지지 않을지, 나약해지지 않을지 등등 이런저런 고민이 발생하는 것이다.

추운겨울 지하철을 나오면서 그 차가운 지하도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측은한 마음에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내 주지만, 훗날 같은 사람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과연 내가 제대로 베푼 것인지 의구심이 들고 만다.

때로는 베풀지 않음이 보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이는 사실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게 바로 반야의 의미이다. 그를 진정 위해주려거든 좀 더 먼 곳까지를 배려해 주었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사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그렇게 존재하지 않도록 손수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가난하고 약한 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가 무엇인지 고려하게 되고, 그런 장치가 아직 없다면 만들도록 종용해야 하리라.

베풀지 않는 게 때로는 참 보시

이렇듯 보시 하나를 온전하게 실행함에도 실로 지혜가 발동하고, 정진이 드러나고, 인욕이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해진 보시를 향한 갖은 노력이 완성되어 갈 때 느끼는 행복감이 다름 아닌 삼매이다. 또한 그 행복한 삼매에 충만된 마음은 저절로 가라앉으니, 이 가라앉고 고요해진 마음을 바라보고 음미하는 일이 바로 보살의 선(禪)이다. 그러니 보시야 말로 선정에 드는 확고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부처님의 나라는 이렇게 해서 완성되리라. 그래서 보살은 에너지가 넘쳐야 하니, 반드시 불퇴전의 지위를 얻고 볼 일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자기 아이가 단 것을 좋아한다고 아무 때나 사탕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능하면 단 것을 먹지 못하도록 타이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진정 위해주기 때문이다. 팔천송반야에서 뭇 유정들을 향한 보살의 마음을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그런 마음에 비유함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베풀되 잘 베푼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김형준 박사(경전연구소 상임연구원)
jhana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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