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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학명선사의 ‘獨살림하는 법려에게 권함’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오직 道만을 닦으며 오직 德만을 밝히라

대저 세존께서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시었으므로 그 뒤를 이어 승려가 되는 자도 또한 일대사인연으로써 속계(俗界)를 뛰어나서 진계(眞界)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그 일대사인연 상에서 각각 소장(所長)에 따라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보살이며 조사이며 선사이며 법사이며 화상이며 대사이며 비구라 하고, 속인으로부터 일컬을 때도 또한 도승, 고승, 종교인이라 하나니,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부르는 명칭이 세속 사람들의 부귀명예와 더불어 멀리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금천하에 출가하여 법을 구하려는 사람은 큰 대비원력으로 일대사인연을 계발하며 일대사인연을 이력하며 일대사인연을 구경하며 일대사인연을 응용하여 오직 일대사인연으로써 스스로 깨닫고 남도 깨우칠 뿐이고, 그 외에는 가히 구할 법도 없으며 가히 행할 일도 없거늘 이것을 내버리고 다른 길로 간다면 그것을 이름하여 사도라 하며 외도라 하나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근일에 우리 조선의 승려 되는 자로 말하면 승려라는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부처와 조사의 본의가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이 출가입산하는 날부터 몸만 한적한 운림(雲林)에 집어 던지고 눈은 재물과 이익의 주선에 혈안이 되어 일출일입이라도 공(公)을 빙자하여 사(私)를 영위하거나 남에게는 손해를 입히면서 자기만 이롭게 하여 오직 이런 일에만 종사한다.

그 중에도 심한 자는 사찰의 상주물을 남용하여 절과 자신이 패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런 행동이 있고 이런 지견(知見)이 있으면 어느 때에 옛날의 현철(賢哲)들과 같은 높은 명예가 그 몸에 돌아가리오.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승려로 있더라도 다만 모갑이라는 승려 명색만 있을 뿐이로다.

내가 원하는 바는 우리 법려(法侶)가 오직 도(道)만을 닦으며 오직 덕(德)만을 밝히며 오직 공심만을 행하며 오직 정도로만 돌아가서 이렇게 쉬지 말고 쉬지 말아서 평등한데 이르고 평등을 쓰게 되면 그 깨달음은 무연(無緣)에 계합하고 다시 유연(有緣)을 제도하리니, 그 때는 옛 조사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불조(佛祖)와 더불어 손을 마주잡고 함께 비로정상에 걸음 걷다가 방초안도(芳草岸頭)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불법의 성쇠와 사찰의 존망과 승려의 진퇴가 대개는 근본을 버리고 지말(枝末)을 따르는 것과 공(公)을 빙자하여 사(私)를 영위하는 것과 정(正)에서 나와 사(邪)로 들어가는 악풍과 폐습과 마행에 그 원인이 있다.

풍조니 해방이니 통속을 다 그만두고 자신의 본래면목, 불조의 바른 지견, 사찰의 근본 청규, 승려의 올바른 율의를 절마다 올바르게 되돌리고 개개인마다 여법히 하면 만천하 인생이 모두 승화(僧化), 사화(寺化), 법화(法化), 불화(佛化)가 될 줄로 생각하나이다




학명 스님은?

학명(鶴鳴, 1867~1929) 스님은 한 손에는 농기구를 들고 한 손에는 죽비를 들고 선농을 겸수하며 선풍을 진작시켰던 선사다. 일찍이 중국과 일본에 건너가 여러 선지식을 찾아 법거량을 나누며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또 한글 가사를 지어 높은 문학적 감성으로 깨달음을 노래하여 서민 대중 계도에 앞장서기도 했던 근대의 대표적인 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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