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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나라(奈良) 고후쿠지(興福寺)

기자명 법보신문

얼굴 셋 달린 아수라가
일체유심조를 가르치다

<사진설명>고후쿠지 국보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아수라상. 고뇌에 찬 듯 인상을 쓰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번뇌가 느껴진다.

고후쿠지(興福寺) 동금당(東金堂)에 들어서자, 특이한 조상(彫像) 하나가 눈길을 끈다. 부처님과 문수보살 사이에서 ‘인상을 찌푸린’ 영감님 한 분이 앉아 있다.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그는 다름 아닌 유마거사다. 재가불자인 유마거사가 법당에 모셔진 것도 그렇거니와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찌푸린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곳에 유마거사를 모신 것은 고후쿠지가 후지와라 가문의 원찰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고후쿠지는 헤이안시대 말기 140여 년간 천황의 섭정을 담당했던 후지와라 집안이 건립한 사찰이다. 당시 고후쿠지에서는 매년 10월이 되면 7일간 유마회가 열렸다. 유마회에 참가한 사람들 또한 분명 황실의 일족과 귀족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유마회를 통해 불법을 배우고 친목을 도모하면서 자신들의 정책이 세상을 구하고 중생들을 구제하는 여법한 보살행이 되기를 바랐다. 그들에게 있어 유마 거사는 중생을 이끈 이상적인 불자이자 지도자의 표상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얼굴의 주름, 손등의 핏줄, 병들어 번뇌하는 표정, 사람의 눈과 똑같은 모양으로 옥을 다듬어 만든 눈 등 동아시아권 조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실적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발길을 돌려 국보관(國寶館)으로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수의 국보들이 진열돼 있다. 오층탑과 동금당, 그리고 국보관 등 몇 개 건물이 고작인 작은 사찰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과거 전성기의 고후쿠지는 무려 1000여개의 법당이 위치해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특히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라성 같은 불교조각가들이 이곳 고후쿠지의 불사에 동참한 것도 이곳에 수많은 국보가 자리 잡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가가 불사를 주도했으니, 최고로 실력 있는 장인들이 초빙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고.

<사진설명>고후쿠지 전경.

고후쿠지의 부처님과 보살들 모습은 정말 ‘일본’스럽다. 한반도와 중국의 영향에서 살짝 비켜나가 일본식 문화가 창작되기 시작한 헤이안시대 조각들에는 점차 ‘일본인의 얼굴’이 담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12세기경 세이초(成朝)와 코케이(康慶), 코케이의 아들 운케이(運慶), 그리고 코케이의 제자 카이케이(慶)는 ‘일본색’이 살아있는 조각품들을 탄생시켜 일본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를 이어받아 조케이(定慶)와 단케이(湛慶:운케이의 아들)가 활약하면서 일본 불교미술은 대륙의 영향에서 훌쩍 벗어난 뚜렷한 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름에 케이(慶)가 들어가는 이들의 시대를 케이하(慶派)라고 부른다.

누가 석굴암 부처님을 탄생시켰는지 이름조차 알 길 없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이렇게 작가들의 계보와 작품론까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과거’를 버릴 줄 모르는 일본인들의 애착, 아니 장인정신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코케이는 1189년 법상육조좌상 여섯 분을 조성했고, 그 아들 운케이는 1212년 무착보살과 세친보살을 조상했다. 그리고 동금당에 안치된 유마거사상은 1196년 조케이가 진흙을 빚어 만든 작품이다.

고후쿠지 전시실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도니스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미소년상이 안치돼 있다. 고후쿠지에서도 인기순위 1위라고 한다. 삼면의 아름다운 얼굴은 왠지 수심에 찬 듯 눈썹을 찌푸린 채, 두 개의 팔은 합장 반배를, 나머지 네 개의 팔은 무용수처럼 허공을 향해 뻗고 있다. 그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에게 붙여진 이름은 바로 아수라가 아닌가!

『잡아함경』에 등장하는 아수라는 제석천과 싸움에 붙어 세상을 피바다로 만든다는, 세 개의 얼굴은 흉측하기 그지없으며, 팔도 여섯 개나 달렸다는 괴물이다. 수미산 아래 거대한 바다 밑에 살며 수억만 리나 되는 크기에다 수백억년이나 장수하는 귀신으로, 본래는 착한 신(神)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의의 상징인 하늘과 싸우곤 하는데,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아수라(阿修羅)가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선행을 해 이 세상에 정의가 널리 행해지면 하늘의 힘이 강해져 이기게 되지만, 반대로 인간들이 못된 짓을 하고 불의가 만연해 있으면 아수라의 힘이 세져 하늘이 지게 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각가는 지옥의 악신인 그의 모습을 왜 저렇게, 슬프리만치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빚은 것일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그 조상 앞에서 도저히 발을 뗄 수가 없다.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듯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가슴에 물 기운이 가득 고여 온다. 문득 젊은 베르테르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 아수라상은 너무 사랑해서, 너무 갈망해서, 그렇게 사무치다 못해 고통스러워진 중생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런지.

여래장을 향한 생의 의지와 쾌락으로 치닫는 욕망은 인간의 내면에서 항상 다투기 마련이다. 욕망에 굴복하는 경우 우리는 쾌락에 도달하지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피범벅이 될 정도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과 윤리를 만들어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려 한다. 하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 어찌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만 치부될 수 있겠는가. 특히나 인간의 욕망을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아수라로 비유되는 욕망의 구렁텅이조차 결코 악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설명>동금당에 안치된 유머거상.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했던 유마의 병색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일본인들은 결코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신분이 출가자라 할지라도 그의 욕망은 거세돼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긍정되고 존중받아야 할 몫이다. 여기에 일본인들 사유의 특수성이 내재돼 있다. 물론 일본의 신도(神道)도 불교와 유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유방식이다.

저 아름다운 청년은 일본인들의 ‘모노노아하레(物哀)’의 상징일 것이다. ‘모노노아하레’는 헤이안 시대의 애상적인 정조를 나타내는 말로 ‘사물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병이 되고, 너무 사랑하면 집착하고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바로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지옥’을 지극히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아수라라는 이름을 가진, 너무나 일찍 나이가 들어버린 슬픈 눈동자의 청년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법 높은 보살보다도 더 깊게 나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나를 부드럽게 껴안으며 괜찮다고, 중생의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욕망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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