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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공덕도 마음따라 다르니 분노 누르며 내면 살펴야

기자명 법보신문

승가종 종정 습득 월 인 스님

저는 오늘 쉽고 웃음만이 가득한 법문을 하려고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야 들을 기회가 많겠지요. 우리 주변에는 좋은 경전도 있고 훌륭한 학자들도 많습니다. 법문을 하시는 스님들도 ‘도(道)’며 ‘마음공부’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들이지요. 근기(根機)가 높은 분들이야 단박에 깨닫고 무릎을 치겠지만, 대다수 불자들에겐 그림 속에 보석입니다. 불교는 참으로 어려운 난해한 종교입니다.

제가 쉬운 법문을 하겠다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너무 쉽다보니 웃음이 절로 나겠지만 어쩌면 이런 법문이 진짜 법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말로 눈높이 법문이라고나 할까요.

지성이면 감천

여러분, 들어보셨겠지만 우리말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극 정성으로 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입니다. 울산 문수암에는 지성으로 감천을 이룬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문수암에 어떤 노 보살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아 모두 까막눈이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제법 오래된 옛날 같습니다. 이 노 보살 또한 당연히 이름 석 자도 쓸 수 없는 까막눈이었지요.

그러나 신심은 깊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정리하고 나면 반드시 절에 들렀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 보살이 중풍에 걸려, 꼼짝없이 집에 누워있게 됐습니다. 절에 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신심 깊은 노 보살이 절에 오지 않으니, 문수사 주지 스님도 걱정이 됐겠지요. 그래서 주지 스님이 직접 노보살의 집에 문안을 왔습니다. 주지 스님이 와서 노보살의 상태를 보니, 연세도 많고 기력도 약해져 다시는 회복하기가 힘들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이제 절에 오기도 힘들고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열심히 ‘나무아미타불’만을 염송하라고 일렀습니다. 스님의 말을 들은 노 보살은 이후 가녀린 손으로 염주를 돌리며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되 뇌였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많다보니, 가끔은 정신도 가물가물해져요.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든, 관세음보살을 부르든 정확하게 불러야 하는데, 어느 날 노 보살이 갑자기 나무아미타불을 잊어버렸던 것이지요.

순간 노 보살은 당황했습니다. “아이고! 내가 무슨 염불을 했더라”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도도 젊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 짝입니다. 오래된 수레가 달릴 수 없듯이 사람도 나이를 먹으니, 온전하게 수행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고 더듬다보니 무슨 타불이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무슨 타불일까, 무슨 타불일까”하고 매일 혼자말로 중얼거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하던 며느리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궁금함을 참다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와서 묻습니다. “어머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혼자 말을 하십니까” 그러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스님이 열심히 염불을 하라며 알려줬는데, 타불만이 기억나고 그 앞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고부갈등이 심각했던 거지요.

탐욕 담긴 염불 소용없어

며느리는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부릅니다. “됐다. 기회는 이 때다. 이제야 시어머니에게 원수 갚을 때가 돌아왔다” 평소 시어머니를 사모하던 뒷집 영감에 대해 알고 있었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어머니, 제가 들으니 뒷집영감 불알타불이라고 하던걸요”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총기가 흐려진 노 보살은 “그래 맞다”하며 그새 표정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뒷집영감 불알타불, 뒷집영감 불알타불”하고 일념으로 외우기 시작합니다. 노 보살은 불알타불을 나무아미타불로 믿은 것이지요. 노보살의 염불은 끊이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은 한 방울의 힘을 모아 열심히 아미타불을 부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방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연출됩니다. 노 보살이 연꽃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지요. 며느리를 보자 연꽃은 노 보살을 싣고 붕 떠서 마당을 나오더니, 마당을 한 바퀴 돕니다. 그리고 그대로 서쪽을 날아가 버렸습니다.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서쪽에는 극락이 있지요. 서방정토가 그곳에 있습니다. 노 보살은 산 채로 극락으로 간 것이지요.

이 장면을 지켜 본 며느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아, 극락정토에 가려면 나무아미타불이 찾을 것이 아니라, 뒷집영감 불알타불을 불러야겠구나. 그래서 며느리도 이날 이후로 뒷집영감 불알타불을 염송했습니다. 오로지 극락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됐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불알타불 염송을 그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시어머니 방문을 열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불알타불’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이제는 시어머니가 된 그 며느리 방을 말입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시어머니 방을 열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방이 지진이 난 것처럼 갑자기 짝 갈라집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산 채로 땅속으로 쏙 빠져버린 것입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산채로 지옥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똑같이 불알타불이라 했는데 시어머니는 극락에 가고 며느리는 지옥에 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정성의 차이지요.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다른 점은 바로 마음입니다. 시어머니는 불알타불에는 진심과 정성이 담겨있지만 며느리의 불알타불은 탐욕과 거짓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열심히 부처님께 절을 하고, 보시를 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도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갑니다.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로 예를 들어볼까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영접하면 천국이 눈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백년을 모시고 있어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결국 지옥의 문 앞에 놓이게 됩니다. 부처님을 따르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한 이들은 극락, 천국에 가고, 나쁜 이들은 지옥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과의 법칙입니다. 팥을 심었는데, 어떻게 콩이 되겠습니까. 콩을 심었는데, 어떻게 팥이 열리겠습니까.

인연-과보에 귀 기울여야

팔만대장경을 달달 외우고, 참선을 하고, 염불을 해도 나쁜 짓을 하면 그 과보를 비켜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불법에 무지해도 착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면 극락에 가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외에 마음이 따로 없다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다” 이 말이지요. 여러분의 선한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거사님들, 뒤에 보살님들, 모두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소도, 닭도, 개도, 파랑새도, 두견새도 다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개미가 가는 길을 막아봅니다. 그러자 개미가 왔다 갔다 하다 돌아갑니다. “봐요, 마음이 있지요”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성불합니다. 빠르고 늦음이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들 모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성불합니다. 제가 보기에 여러분의 마음이 아주 맑아 보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티가 없습니다. 성불이 더욱 가까이 있는 셈이겠지요.

여러분, 언제나 맑고 착하게 살도록 노력하십시오. 탐욕과 분노를 누르고 차분하게 내면을 살펴보십시오. 하루를 맑은 기운을 쌓는 재미로 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금생에 여러분은 반드시 성불하실 것입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승가종 종정 습득 월인 스님이 부산 원광사(주지 삼광 스님)에서 열린 초청 대법회에서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월인 스님은

부산 서래암에 주석하고 있는 습득 월인 스님은 지난 2001년 승가종을 창종하고 종정으로 추대돼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승가종 내에 스님들을 위한 강원과 재가불자를 위한 법사대학과 범음범패대학을 열었으며, 지금은 진주 무량사 총본산 내에 노스님들을 위한 실버요양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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