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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만해 漢詩병풍 ‘尋牛詩’ 첫 공개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6.05.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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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와 경봉이 나눈 선문답의 완결편
동국대 도서관, ‘동국 백년전’에 전시

<사진설명>동국대가 건학 100주년을 맞아 공개한 만해의 심우시 병품. 이 시는 만해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준 것으로 이 시를 경봉 스님으로 부터 받은 정재철 전 장관의 부인 전금주 씨가 보관하다, 부인이 작고한 후 정 전 장관이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에 기증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친필 한시 ‘심우시(尋牛詩)’가 최초로 공개됐다.

동국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의 1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국백년전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만해 스님의 친필 한시가 쓰여진 10폭짜리 병풍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 시는 만해 스님이 평소에 아끼던 후배 경봉 스님에게 직접 써준 것으로, 경봉 스님이 생전에 정재철 전 장관의 부인 전금주 씨에게 건네준 것을 정 전 장관이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에 기증한 것이다.

시의 내용은 불교의 깨달음을 목동이 방황하고 있는 소를 찾아가는 모습에 비유한 심우도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가 쓰여진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봉 스님에게 건내준 정황이나 시에 드러난 내용으로 추측해 볼 때 1925년대 전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동국대학교 김상일 교수의 설명이다.

경봉 스님은 16살에 통도사에서 출가한 후 20살 때(1913년) 통도사로 잠시 내려온 만해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다. 만해 스님이 다시 경성으로 올라온 후 1933년 남산 자락에 심우장이라는 집을 짓자, 경봉 스님은 만해 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선문답을 물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경봉 스님이 만해 스님에게 “집을 심우장이라 하였으니 소를 잃은 것도 분명하구나. 만약 본래 잃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소를 찾는다 하며, 또 만약 소를 잃었다면 어떻게 소를 먹인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편지를 보내자 만해 스님은 경봉 스님에게 “털과 뿔이 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얻고 잃음이 있겠소. 목부가 일이 많아서 부질없이 심우장을 지었네.”라고 답신을 보냈다.

이번에 발견된 만해의 시 또한 ‘심우도’를 연상시키는 7언 절구 한시이다. 이 시는 경봉 스님에게 보낸 답의 완결편으로 보인다.

시에는 “보았으나 잡을 수 없다 의심이 다시 들어/ 흔들리는 모심(毛心) 누르기 어려워라./ 그 고삐 내 손에 있음 단박 깨치니/ 이는 분명 원래 떨어진 적 없었던 듯”을 비롯해 십우도를 연상시키는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 시를 번역한 동국대 김상일 교수는 ‘심우시’라는 가칭을 붙였다.

동국대 김상일 교수는 “만해가 1925년 집필한 ‘십현담 주해’와 이 작품의 사상적 지향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 시기는 만해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운동에 참여해 3년을 복역하고 나온 이후며, 26년 출간된 시집 ‘님의 침묵’을 갈무리하던 무렵”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시의 내용은 심우도의 정신과 같으나, 표현에 있어서의 시적 유려함이나 단호함, 그리고 활달함은 만해 시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며 “특히 ‘진흙 속에도 물 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내지 않네./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 부분은 식민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만해의 의지가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동국백년전에는 이밖에도 100년전 북묘의 사진, 3·1만세운동, 4.19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 속에 등장하는 동국대의 모습과, 영화·문학 등 현대 문화를 주도한 동국대인들의 활약 등 동국대의 100년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미당의 ‘박한영 스님 한시 번역본’ 원고 공개

동국대도서관, 미당문고에서 발견
16일 ‘스승의 날’ 맞아 책으로 출간

서정주 시인이 스승 석전 박한영 스님의 한시 130여수를 번역한 유고가 5월 4일 동국대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유고는 2000년 미당이 세상을 떠나면서 동국대에 기증한 육필 원고, 사진 자료 등 유품 1만2천여 점 중에 포함돼 있던 것이다.

동국대에 따르면 공개된 원고들은 육당 최남선이 석전의 한시 420여 수를 수록해 놓은 ‘석전시초’(1940년)를 번역한 것으로, 미당은 그 가운데 130여 수를 선별해 원고지에 원문을 쓰고 옆에 한글로 번역했다.

박한영 스님은 동국대 전신인 불교고등강숙 숙사, 중앙학림 강사 및 교장, 대원불교강원 강주,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 태고·조계종 교정 등을 지낸 한국 불교계 최고지도자 중 한 명이다. 또한 스님은 일제치하 조선의 3대 천재로 일컬어지던 위당 정인보,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를 배출한 스승으로 추앙돼 왔다.

서정주 시인은 젊은 시절 박한영 스님 밑에서 출가하려 했으나 스님의 만류로 출가의 뜻을 꺾었음을 그의 자선전적 수필 『천지유정』에서 밝힌 바 있다.

서정주의 제자인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미당이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을 당한 뒤 방황하고 있을 때 미당을 불러 제자로 삼아 가르침을 주었고 당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시켰다”며 “스승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 석전의 시를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미당과 동국대가 맺은 아름다운 선연을 기리기 위해 개교 100주년을 맞아 유고를 공개하게 됐다”며 “15일 ‘스승의 날’에 맞춰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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