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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법당을 주목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

불교 최초의 가람은 죽림정사(竹林精舍)다. 이는 중인도 마갈타국 기란타촌에 있었다. 석존께서 성도한 후 기란타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죽림원을 바치고 빔비사라왕이 그곳에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하여 큰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곧 죽림정사다.

불교의 사찰은 대부분 국왕이나 또는 권력의 실력자, 그렇지 않으면 장자로서 소위 갑부들이 만들고, 큰스님과 그 제자들이 공부한 곳으로 원찰의 성격이 크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사찰과 승가의 제도적 불교가 형성되었다. 그 후 불교의 삼보로서 부처님(佛)과 부처님이 말씀한 법(法), 그 법을 잇는 스님(僧) 등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찰은 승가를 형성하고 스님만이 거주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신도는 승가 중심의 법규를 따라야 했다. 그러던 사찰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도들에게 개방되어 승가뿐 아니라 신도들도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근래에는 사찰의 운영을 신도들에게 맡기고 스님은 자신의 공부나 신도들의 신앙을 인도해 주는 사찰도 많이 늘었다. 절의 스님이나 신도들의 의식이 많이 변한 것이다. 더욱 변화를 가져온 것은 과거에는 고승 한분을 중심으로 사찰이 이뤄졌으나 이제는 뜻이 통하는 신도들이 각각 재정을 분담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얻어 법당을 꾸미고 자기들이 원하는 스님이나 불교 학자를 모셔서 강의를 듣고 신심을 키우는 소위 ‘맞춤형’ 법당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잘 아는 스님 한분을 뵈었다. 요사이 스님께서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었더니 대답하시기를 강남에 몇몇 보살이 법당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번 씩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법당은 돈을 부담한 사람들만 와서 자기네가 관리 유지한다고 했다.

법당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우리의 상식으론 부처님을 시봉하는 스님이나 법사가 상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공간이고 다른 사람들은 출입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절집에서 흔히 말하는 ‘대중살이’와 ‘독살이’라는 용어가 있다. 대중살이는 알다시피 큰절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고, 독살이는 토굴을 짓고 혼자 사는 것을 말한다. 맞춤형 법당이 꼭 독살이는 아닐지언정 그 내용에 있어서 독살이와 비슷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불교의 귀족화’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기성불교, 즉 제도적 승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고, 이러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는 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이 생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대안 요청의 결과로 이해된다. 물론 불교의 교리로서도 어긋나는 바가 없다.

그러나 의식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종교로서는 대단한 파격이다. 그러한 행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갖으려는 특권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공부의 특성화를 요구하는 의욕의 소산으로도 볼 수 있다. 사찰의 일반적인 법문에 만족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을 찾아가자니 자기들의 수준에 맞는 곳도 마땅치 않고, 집근처도 아니고 교통도 불편하니 차라리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맞춤형 공부를 하자는 데서 이러한 ‘맞춤형 법당’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상주하며 스님을 그때그때 맞춤형으로 모셔다 공부하자는 것이다.

사찰을 떠나려는 신도들을 다시 사찰로 회귀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기존 사찰의 모든 운영도 맞춤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신도들만의 맞춤형 공부는 불교를 스승 없는 불교로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제 사찰은 신도들의 수준에 맞춰 법회도 다각적으로 열고 법당 사용도 능동적으로 교육하는 법당으로 ‘맞춤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제도권 불교의 위기 극복은 부단히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안주해서는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승가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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