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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보자

기자명 법보신문

효 림 스님
실천불교 대표

저 아름다운 5월의 실록이 날마다 새롭게 단장을 한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아침안개가 계곡이고 산 능선이고 피어올라 그야 말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러더니 낮에는 쾌청한 하늘이며 산 빛이 말끔하게 세수한 얼굴모양 싱그럽다.
 
점심을 먹고 숲속에 들어가 한나절을 내내 그냥 앉아 있다가 왔다. 산에 사는 나도 공기가 이렇게 달고 맛이 있는데,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런 공기를 마신다면 얼마나 좋아 할까 싶은 생각에 몇몇 지기들에게 이 공기를 어떤 기구에 담아서 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숲속에 조용히 앉아/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를 들어본다./ 미세한 바람에 나뭇잎들이 가늘게 흔들리는 소리/ 애벌레가 연한 잎만 골라 갉아먹는 소리/ 새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는 소리/ 무엇보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본다.
그냥 한나절이고 두나 절이고 숲속에 앉아/ 소리 없는 소리로 부르는 나무들의 노랫소리를 들어본다. -졸시 숲속에서-

숲은 고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숲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요한 가운데 매우 활발한 활동이 있다. 무엇보다 숲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귀를 기우려 들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숲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접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나절 숲속에 앉아 있다가 돌아와 위의 시를 썼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산을 볼 때도 건성으로 보고 꽃을 볼 때도 대충보고 마는 때가 많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차를 타고 고생하고 절을 찾아오지만 정작 절에 와서는 마당을 대충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한다. “힘 드는데 뭐 산에 갈 것 있어. 가봐야 나무 있고, 풀 있고 그렇지 그냥 갑시다” 한다. 무엇이든지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찬찬히 감상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보는 것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몰리면 그냥 그쪽으로 우르르 휩쓸려 갈뿐 자신이 왜 그리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누가 말하기를 우리 사회는 쏠림 현상이 유독 많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 말이 맞는다고 보여 진다.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 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또 찬찬히 관찰한 뒤에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좋다고 하면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언론이 여당을 욕하면 따라서 욕하고 야당을 비난하면 따라서 비난하고, 나는 경상도이니 경상도 당을 찍고, 나는 전라도 이니 전라도 당을 찍는다는 식이 그것이다. 정권을 욕하는 사람은 많이 보아도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욕하느냐고 하면 말을 못한다.

이제 우리도 정치인에게만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 백성도 진중하고 진지하게 정치인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무엇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남이 하는 비판이니까 나도 따라 한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귀를 열어놓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귀를 기우려 들을 때 비로소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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