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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인연

기자명 법보신문

이 기 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지난 5월 27일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리히터 규모 6.2의 강진이 발생해 벌써 사망자가 5000이 넘었다. 우리나라도 4월 말 울진 앞 바다에 지진이 많이 발생해 기상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정부도 우려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울진, 고리, 월성 등 원자력발전소들이 위치한 양산단층대와 연결되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양산단층대는 부산에서 양산, 경주, 포항, 영덕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과 울산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울산단층 그리고 이 일대의 소규모 단층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층이란 과거 지각변동 과정에서 지각이 깨어진 약한 부분을 말한다. 지진이란 지각에 작용하는 응력에 의하여 지각이 깨어지는 현상이다. 지각에 응력이 작용할 때 주로 약한 부분이 깨어지게 됨으로 지진은 거의 전부가 단층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지질학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깨어진 적이 있는 단층에서 지진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단층을 활성단층이라 부르며 지금부터 200만 년 전까지의 제사기(第四期)에 깨어진 흔적이 있는 단층을 말한다.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대라는 주장이 1980년 대 초기에 필자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그 주된 근거는 이 단층대에서 지난 2000년에 큰 지진들이 10여회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779년에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지고 100 여명이 사망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지난 2000년 간 10여 회의 큰 지진들이 발생했으니 활성단층임이 분명한 것이다. 활성단층은 현재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도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지진학적 관점이다.

필자의 이 주장은 많은 논란을 제기했다. 그 이유는 양산단층 주변의 원자력발전소들이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불합리한 전제하에서 내진설계(耐震設計)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문제로 필자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국내 학자들이 필자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부와 처음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조사했던 출연연구기관이 아직도 이 문제에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도 1997년 6월 경주에서 담이 무너지고 건물 벽에 균열이 생긴 규모 4.3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양산단층대는 아직 조사가 미흡하지만 동해로 연장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최근 울진 앞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들은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인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필자는 1978년에 모교에 부임했고 그해 10월에 홍성에서 규모 5.0정도의 강진이 발생해 우리나라의 지진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과거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캐나다 서해안의 빅토리아지구물리연구소에 부임하던 날, 지역에 지진이 발생하자 연구소장은 “‘지진을 연구하라’고 당신을 보낸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었다. 귀국할 때 내가 우리나라의 지진을 이렇게 오랫동안 연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자가 어떤 학문을 연구하게 되는 것도 결국 깊은 인연에 의한 것인 것 같다. 나는 지진학자로서 또 본의 아니게 과분한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지진만 나면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사에서 해설요청이 들어왔고,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이들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응해왔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이 모두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그 인연을 좋은 방향으로 살려야 한다. 그 방법은 정직하게 인연으로 다가오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 그러하지도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상 정직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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