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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묘향산 보현사 (下)

기자명 이학종

5만 평방미터 광활한 터에, 1殿-2塔-1樓-3門 가지런히

눈 내리는 보현사의 설경이 절정이다. 고색창연한 당우들과 돌탑이 흰눈에 묻혀 만들어내는 풍광은 언설로 표현할 경지를 훌쩍 넘어섰다. 주지 청운 스님의 안내에 따라 우리 일행은 보현사 경내를 차례로 돌며 참배를 시작했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의 지도로 사찰에 견학 온 말 잘 듣는 어린아이들처럼. 순간순간 틈을 내어 촬영을 하느라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가능한 많은 사진을 확보하기 위해 신심(身心)이 몹시 바쁘다.

알다시피, 보현사는 조선시대 3보 지위를 갖춘 사찰로 통한다. 3보지위를 갖췄다는 것은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의 지위를 한꺼번에 갖춘 위치에 있었던 대찰을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은 통도사의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금강산으로 옮겼다가 절반을 갈라 다시 양산 통도사와 묘향산 보현사에 모셨고, 이 사리는 1603년 보현사 내원암 지구에 '석가세존금골사리탑'을 세워 보관하였는데, 그 뒤 이 탑은 보현사 뒤 용주봉 마루에 이설하였다. 보현사에는 또 팔만대장경 판본 6,793본 전질이 소장돼 있다. 이것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으로 찍은 것이다. 또한 보현사는 서산과 함께 그 뒤를 이은 허백 등 수많은 스님들이 주석한 승보대찰이었다. 이런 연유로 보현사를 조선불교의 3보사찰 지위를 한꺼번에 갖춘 사찰로 일컫는 것이다. 3보 사찰을 한꺼번에 합한 정도의 지위라니, 보현사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는 곳마다 국보·보물…종합박물관 격

현재의 보현사가 비록 옛날의 웅자를 다 갖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명산대찰의 면모가 남아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만여 평방미터의 부지에 자오선 축으로 1전-2탑-1루-3문의 형식을 갖추고 횡축선으로 만수각, 관음전, 영산전과 수충사, 팔만대장경보존고가 자리 잡고 있으며, 다시 서쪽으로 갈라 다라니 석당과 종각이 놓여 건물배치가 종축에서부터 타원형으로 이뤄져 있다. 주지 스님은 '이 나마 본래의 절 규모에 절반도 안 되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절 입구에는 선종과 조계종을 종지로 하는 절이라는 의미로 '조계문'(국보 40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관서지방의 사찰을 모두 관장하는 지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관서총림규정문'이란 현판이 그 아래쪽에 걸려 있다. 조계문을 지나 해탈문으로 가는 사이의 전나무 숲으로 이뤄진 공간에는 10개의 비석이 줄지어 있고, 고려 인종이 세운 '묘향산보현사지기'(국보 144호)가 세워져 있다. 각 문마다 세워진 동자상와 사천왕상 앞에는 '문화유물 애호'라는 빨간색 글귀를 적어놓았다. 사천왕상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바람결에 휘날리는 깃발의 방향과 옷소매의 날림 방향이 엇갈리는 등 엉성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런대로 해학과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눈으로 장엄한 전나무 숲길의 아름다움은 지나는 이의 넋을 빼앗는다. 숲길 옆으로 비가 서 있는데, 비문은 김부식이, 글씨는 서예가 문공유의 작품이다. 역시 국보 40호로 지정된 해탈문과 천왕문을 빠져나가면 국보 142호로 지정된 다보탑이 기운찬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화강암을 4각으로 다듬어 9층으로 쌓은 것인데, 1044년에 조성됐다. 높이가 8미터에 이르고 기단부분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탑의 전면에 다보불을 넣었던 불감이 있다. 조선건축의 추녀마루처럼 지붕의 곡선미가 뛰어난 고려초기의 우수한 석탑이다. 다보탑 옆의 염주나무(보리수)는 다보탑과 만세루와 어울려 독특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만세루(국보 45호)는 우진각 건축의 전형으로 웅장함과 경쾌함을 함께 갖추고 있다. 경사지대를 재치 있게 활용해 앞면은 2층,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한 다락형태의 건물이다. 누각 안에 4물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모두 타버렸다. 만세루 뒤쪽으로 있는 탑과 대웅전은 보현사를 상징하는 두 대표적인 유물. 석가여래탑(보현사 8각13층탑, 국보 143호)는 수려한 산발을 배경으로 그 비탈면에 세워 대웅전과 만세루의 높낮이를 잘 조율한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월정사 탑을 연상케 하는데, 그 장중함과 아름다움은 곱절 더하다.


다보탑-석가여래탑, 고려탑의 진수 뽐내

조선말 명성황후가 태자의 장수를 빌기 위해 상원암 옆에 축성전을 짓고 사신들의 거처로 지은 건물 만수각과 그 옆으로 서 있는 관음전(국보 57호)과 영산전은 단청과 불상의 모습이 고색창연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건물이다.

서산과 사명, 처영 스님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 수충사는 눈 덮인 모습이 아름답고 그 앞쪽에 세워진 팔만대장경 보존고 두 동이 고려시기 건축양식으로 지은 경전고이다. 1호 동에는 팔만대장경과 보현사가 자체로 출간한 '부모은중경'이 보존돼 있고, 2호 동에는 묘향산 지구와 북한 각지에서 수집한 귀중한 불상과 공예품들이 보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7세기 경에 조성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밖에도 금강산 향로봉에서 발굴한 금동아미타삼존불, 묘향산 법왕봉에서 발굴한 석가여래좌상, 고려자기, 청기와, 서산대사 관련 유품, 17세기 화가 김진여의 '묘향산도' 등이 전시돼 있다.

보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중의 하나가 다라니 석당(국보 57호. 오른쪽 사진). 남북한을 합쳐 유일한 것으로 몸체에 범어로 된 주문이 새겨져 있다. 높이가 6.23미터에 이르는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조각미가 우수한 고려시기 귀중한 문화재로 손꼽힌다.

보현사 경내의 여러 당우들은 가히 팔작, 우진각, 맞배 양식 건축물의 살아있는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경내를 돌아보며 보현사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되레 피해를 보는 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것 하나, 국보요, 보물 아닌게 없고, 나머지 것들조차 저마다 나름의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니 살아 기능하는 생동감 있는 불교 종합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보현사의 거의 모든 것은 국보이고 보물이다. 그러나 보현사의 소중함은 어쩌면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지금도 산내에 수십 명의 스님들이 살며 불공을 드리고 있고, 신도들의 참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설경 좋다' 감탄하자 '봄 풍경이 으뜸'

아무려나. 북녘의 불자들은 건물을 돌아보는 남쪽의 불자들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법당 처마 밑에 서서 재미있는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

'보현사의 설경이 너무 좋다'고 주지 스님에게 말을 건네니, '묘향산 보현사는 봄이 더 좋다'고 대답한다. 이보다 더 좋다면 도대체 보현사의 봄 풍경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주마간산 격으로 절을 돌았는데도 벌써 저녁 무렵이다. 내일은 묘향산의 제일가는 암자로 유명한 상원암을 등반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 이제 향산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눈이 내리는 계곡 길을 따라 조심조심 보현사를 내려온다. 저만치에 보현사 신도들이 눈을 치기 위해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눈이 짐이겠구나'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다. 그러나 힘겹게 눈을 치다가 우리 일행을 실은 승합차가 지나치자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댄다. 뒤질세라,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일행도 손을 흔들었다. 분단을 넘어 남북의 불자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보현사=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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