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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과 통도사

기자명 정일근

통도사에 홍매 필 무렵

추위가 혹독할수록

뜨거움을 가지끝에 보내

환한 꽃등과 함께 향기 번진다




지난 해 만발한 통도사 홍매화



통도사의 겨울은 한 마리 독수리가 하늘을 선회하다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 한 호흡을 멈추고 몰입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산도 그분이 법화경을 말씀하신 그리드라(독수리)산과 같은 영축산이다. 영락없이 날개를 펼친 독수리 형상이다.

눈이 오면 그 날개는 거대한 은빛으로 변하고, 하늘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독수리 날개 위로 쌓인 눈이 풀썩이는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그런 독수리 한 마리 날려 놓고 겨울 선정에 빠져 있는 통도사는 물 잔 속의 물처럼 고요하다.

내게는 늘 그런 겨울 통도사가 마음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선승들의 동안거도 지금쯤 막바지일 것이다. 동안거 입재 전에 만난 눈이 맑은 그도 깊은 삼매에 빠졌을 것이다.

소한, 대한 지나면서 추위가 혹독할수록 나는 통도사 홍매를 떠올린다. 통도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일주문, 극락보전, 영산전, 금강계단… 장중하게 이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홍매나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알지 못하는 음표처럼 절마당에 숨어 있다. 숨어서 저도 한소식 얻겠다고 용맹정진하고 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길을 나귀를 타고 매화를 찾아가며 그 나귀 잔등에 앉아서 시를 얻었다는 옛시인들처럼 통도사 홍매를 만나러 가는 일이 나에게는 시를 찾아가는 길이다. 지난해 적바림을 들쳐보니 음력 섣달 그믐 전에 통도사 홍매가 피었으니 하마 지금쯤 붉은 꽃망울들이 가지마다 따글따글 맺혔을 것이다.

불교와 매화는 인연이 깊다. 일연 스님도 삼국유사 흥법편에 모례의 집에서 아도와 묵호자가 포교를 시작해 신라에 불교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고사를 매화에 빗대어 소개하고 있다. 이는 매화가 불교 그 자체에 비유될 만큼 아름다운 꽃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 통도사 절마당에 홍매를 심었을 것이니. 통도사 홍매는 지금 제 몸 속의 모든 뜨거움을 가지 끝으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홍매는 세한의 날씨 속에서도 통도사 마당에 환한 꽃등을 밝힐 것이다. 벌들이 날아와 붕붕거리고 매화향기는 그윽하게 번져나갈 것이다. 그런 홍매는 나에게 꽃이 아니라 언제나 대자연이 쓰는 시로 읽힌다.

그래서 통도사에 홍매 필 무렵 나는 전전긍긍한다. 대자연이 쓰는 시의 첫문장을 만나고 싶어 마음은 언제나 통도사 극락보전 뒤를 서성이고 있다. 홍매의 붉은 가지가 선방 문에 붉은 그림자를 남길 때 올 동안거도 끝이 날 것이다. 그 날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나 독수리를 다시 하늘로 날리는 눈이 맑은 그를 만나보고 싶다.



정일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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