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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임제(臨濟)

기자명 법보신문

이 기 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장미의 계절이 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다. 장미뿐만이 아니다. 봉선화, 철쭉, 민들레,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도 서로 맵시를 자랑하고 있다. 산책을 즐기는 나에겐 이 꽃들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옛 스님의 말씀에 ‘맑은 구슬을 탁한 물에 넣으면 탁한 물이 맑아지고 부처님 명호를 산란한 마음에 던지면 산란한 마음이 불심이 된다’ 하였다. 이 예쁜 꽃들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평화롭고 청정해짐을 느낀다. 이 마음이 불심이 아닐까?

꽃들이 왜 아름다운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가식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들은 아름답게 보이려고 여러 가지 치장을 한다. 분도 바르고 립스틱도 바르고 예쁜 빛깔의 의상도 걸치고. 남들에게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과장하여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게 어찌 아름다운 면만 있고 추한 점이 없겠는가?

꽃 중의 꽃이라 할 장미를 보자. 빨강, 노랑 그리고 흰 빛깔의 장미꽃 들은 참 예쁘다. 이 예쁜 꽃들로 그 주위의 삭막한 공간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마치 밤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처럼. 그러나 장미의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있다. 분명히 경고한다. 무단히 접근하는 존재는 아프게 찌르겠노라고. 자기는 그저 아름답고 착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 부당한 경우에는 가차 없이 반격하겠노라고. 나는 여기에 장미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동안 장미를 사랑한 릴케(Rilke)도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한다. 장미는 그 아름다움과 표독함을 가식 없이 정직하게 보여준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좋건 싫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생존을 영위해 간다. 또 인간은 중생이라 자기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여기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소위 처세술이 등장한다.

처세술의 요체는 무엇인가?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유능하고 선량하게 보이는 것이다. 여인내들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화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여기에 위선과 가식이 등장한다. 우리 주위의 소위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발견되는 위선은 안톤 슈냑의 말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럼 불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정직한 마음이 보살의 정토라고 말한다. 이 기준에 의하면 부정직한 사람은 보살이 아니고 불자도 아니다. 나는 이점에서 임제(臨濟)를 한없이 존경한다.

임제가 황벽(黃檗)의 문하에 있을 때 그저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그릇을 알아본 누군가 임제에게 왜 그저 일만하는가, 황벽에게 불법을 물어보라고 부추겼다. 그러자 임제는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왜냐하면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얼마나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스승에게 기회만 되면 가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리라.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그러나 임제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정말로 물어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 경우 스승을 만나서 무엇인가 물어본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 질문 자체가 진실하지 못할 때 그것은 스승에게 부정직한 짓이고 그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나라 선종의 휘황한 등불인 임제의 그 무한한 정직과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반야심경에 설했다. 오직 진실만이 허망하지 않다고. 이 혼탁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임제와 장미의 정직과 진실이 우리 불자가 허망하지 않게 자신의 주위를 밝히며 살아가는 등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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