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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시대와 비구니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윤 청 광
방송작가

부처님께서 일찍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무상(無常)의 진리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변한다. 따라서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변하고 산천초목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제도도 변하고 생활풍습도 변하고 법률도 변한다. 도대체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바깥출입을 제법하고 행세깨나 하고 사는 남자가 조강지처 이외에 애첩 한둘쯤 거느리는 것은 큰 흉이 아니었다. 그리고 50여 년 전에는 딸을 중학교, 고등학교, 더더구나 대학까지 보내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철저한 남존여비사회였고, 여자의 미덕은 오로지 순종이었으며 20대 초반에 남편을 사별한 청상(靑孀)에게도 평생토록 수절하여 열녀가 되기를 강요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여자도 당당히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남녀평등의 시대를 넘어서서 여성우위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여성은 감히 들어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도 ‘금녀의 벽’을 오래전에 허물었고, 씩씩하고 당당한 여성장교를 배출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여자라고 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불이익을 받는 분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또 있을 수 없는 ‘양성 평등의 세상’이 되었다.

여성 국회의원에, 여성 장관에, 여성 대학교 총장에, 여성 국무총리, 여성 대법관을 두고 있는 세상, 대한민국은 이미 여성 상위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불교계의 대표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여자라는 이유’, ‘계율 때문에…’라는 핑계로 비구니 스님들이 여전히 차디찬 차별 대우를 감수하고 있다.

최근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조계종의 스님들은 모두 9678분인데, 그 가운데서 비구 스님이 4893분, 비구니 스님이 4885분으로, 비구 스님의 수가 겨우 8분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조계종 스님의 반이 비구니 스님들인데, 이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의무만 잔뜩 부과되어 왔지 권리는 제대로 보장된 것이 없었다.

‘비구니 팔경계’라는 계율, 그리고 조계종의 종헌·종법에 의해 그 동안 비구니 스님들의 참정권은 엄격히 제한되어 왔고, 말로만 ‘사부대중의 종단’이었지, 사실상은 남자 신도, 여자 신도는 물론 비구니 스님들의 권리마저 대폭 제한한 비구 스님들만의 종단 구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율상의 이유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은 총무원장 선거를 비롯한 종무행정 참여에서 비구 스님들보다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온 게 숨길 수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갑자기 열반한 법장(法長) 전 총무원장 스님이 조계종 역사상 최초로 비구니 스님을 부장직(部長職)에 발탁한 것은 그야말로 한국불교 1600년 역사상 가히 혁명적인 사건으로 기록할 만한 쾌거였다.

이제 세상은 갈수록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급격한 변화는 그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세상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하고,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변해가고 있고, 전체 스님의 반수가 비구니 스님이라는 사실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인데, 이 현실을 부정하고 옛 계율만을 내세워 비구니 스님들의 권리를 계속 제한하고 차별대우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만일 부처님께서 오늘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으로 점철된 옛 계율을 내세워 앞으로도 계속 비구니 스님들을 차별하라고 말씀하시겠는가?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인천의 스승으로서 인류의 행복을 열어주어야 할 한국불교는 시대에 걸맞게 제도와 종헌·종법을 손질해서라도 남녀양성 평등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한다. 일부 비구 스님들은 비구니 스님들의 참정권을 확대 허용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부작용은 규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작용은 막되, 비구니 스님들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라는 점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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