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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寺格을 지켜야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해인사에서는 지난 칠석 무렵 비로자나데이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발견된 쌍둥이 목조불상을 기념하기 위한 이 축제의 부제는 ‘천년의 사랑’, 그리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 무렵으로 축제일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랑과 만남의 패션쇼’를 비롯하여 가수 국악인들의 노래 공연이 있었고, 진성여왕과 위홍의 사랑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 ‘사랑이여, 천년의 사랑이여!’는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 진성여왕과 위홍, 쌍둥이 비로자나불, 천년의 사랑, 이런 단어들이 혼재된 축제의 성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행여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여왕과 위홍을 상징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았을지 염려된다.

진성여왕과 위홍의 스캔들을 해인사와 관련지어 이해한 최초의 인물은 조선 초의 조위(曺偉)다. 그가 본 9세기 말의 해인사의 전권(田券)에는 북궁해인수(北宮海印藪), 혜성대왕원당(惠成大王願堂)이라는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북궁해인수란 ‘북궁의 원찰 해인사’라는 의미일 것이기에, 즉위 전에는 북궁장공주(北宮長公主)로 불렸던 공주 만(曼)은 해인사를 원찰로 해서 후원을 했던 것 같다. 위홍이 죽자 왕은 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추봉했다. 그리고 해인사를 원당삼아 위홍의 명복을 빌었음은 ‘혜성대왕원당’이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왕경의 북궁에 살았던 경문왕의 공주는 20대 초에 즉위하여 진성여왕이 되었다. 여왕은 위홍과 정을 통해왔는데, 즉위 2년부터 위홍은 궁궐에서 일을 마음대로 처리했다. 위홍은 여왕의 남편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여왕의 숙부였다. 국정을 총괄하던 위홍이 죽자 왕은 몰래 두세 명의 미소년을 불러 들여 궁중을 음란케 하고 국정의 혼란을 초래했다. 여왕 통치 10년, 어지럽던 나라는 후삼국으로 분열하여 “산천이 모두 전장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병약했던 왕은 어린 조카에게 양위하고, 사제(私第)로 북궁으로 돌아가 6개월 만에 죽었다. 30대 초의 아까운 나이로.

조위는 말했다. “여왕은 해인사를 위홍의 원당으로 삼았기에 왕위를 버리고 오직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절에 몸을 의탁하고, 마침내 이곳에서 죽었으니, 죽어서도 함께 묻히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북궁을 해인사로 단정한 조위는 양위 전후 여왕의 참담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낭만적인 해석을 했던 것이다. 이 무렵 해인사는 도적떼로부터 삼보를 지키기 위해 승속이 무장을 갖추어 대항하는 와중에 56명이나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작년에 발견된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의 묵서명은 “서원하오니, 대각간(大角干)님께 등신(燈身)을 주시며, 우좌(右座)는 왕비님에게 등신(을 주옵소서.) 중화 3년(883) 여름에 이 불상에 금을 칠하여 완성하였다.”로 되어 있다.

두 비로자나불을 여왕과 위홍과 관련짓는 호사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진성여왕 즉위 4년 전에 이 불상은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여왕과 숙부의 스캔들도 천년의 사랑인가? 견우와 직녀처럼 애타게 만나야 되는, 그것도 한 손에는 연등을 들고, 다른 손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대적광전 앞의 탑을 돌아 ‘사랑의 미로’ 같은 해인도를 따라 도는 탑돌이로 미화되고 승화될 수 있는 사랑인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방편이라고. 그러나 진실에 토대하지 않은 방편은 옳은 방편이 아니다.

천 이백년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해인사는 한국문화의 고향이고, 세계적인 명찰이다. 이에 걸 맞는 사격(寺格) 또한 소중하게 지켜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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