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9 복지무비분 1

기자명 법보신문

청정심으로 정각 삼고 평등심으로 선법 닦아라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자하문.

是惡非惡 從善非善 將逐符行 兵隨印轉 有時獨立妙高峰 却來端坐閻羅殿 見盡人間點頭 大悲手眼多方便

악이라 해도 악이 아니요, 선을 쫓아도 선이 아니로다. 장군은 임금의 부적(신표) 따라 행군하고 병졸은 장군의 도장 따라 진군하도다. 홀로 묘하고 높은 봉우리에 서 있다가도 문득 단정하게 염라왕의 궁전에 앉았도다. 모든 인간사를 달관하면 고개만 끄덕일 뿐이니, 관세음보살의 방편은 무궁하도다.

〈보충설명1〉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선악은 모두 자신이 때때로 짓는 마음입니다. 장군이 받아서 지니는 임금의 명령이나 병졸이 따르는 장군의 명령이 다 똑같은 임금의 명령인 것처럼 어떠한 마음도 다 내가 지은 내 마음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변화가 너무 많아서 진실된 모습이 없고 앞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극락과 지옥을 수시로 왕래합니다.

〈보충설명2〉 변화무쌍한 인간사에 달관한 사람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고 모두 수용합니다. 마치 千手千眼의 觀世音菩薩과 같이 변화무쌍한 모습마다 알맞은 많은 방편으로 그것을 수용합니다.

고전 맛보기

老子 道德經 道經 第13章 愛身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之爲上辱之爲下니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矣 愛以身爲天下 乃可託天下

은총과 굴욕을 놀랄 일로 여기고 큰 근심이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여 몸을 살피는 것이 ‘貴’한 것이다.

어떤 것을 ‘은총과 굴욕을 놀랄 일로 여기라’ 하는 것인가? 은총을 받으면 최고의 대접이고 굴욕을 받으면 최하의 대접이니 얻어도 놀랄 일이요, 잃어도 놀랄 일이다.

그러므로 이를 두고 ‘은총도 굴욕도 놀랄 일로 여기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큰 근심이 따를 것을 생각하여 몸을 살피는 게 貴하다’ 하는 것인가?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으면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귀’는 자신의 몸으로써 천하를 위하는 것인 즉 가히 천하를 맡길 만하고, ‘愛’도 자신의 몸으로써 천하를 위하는 것인 즉 가히 천하를 부탁할만 하다.

〈보충설명1〉 노자는 춘추시대 말기 최고의 학자입니다. 그의 학문은 안으로는 성인이 되고 밖으로는 제왕이 되는 학문입니다.

〈보충설명2〉 ‘貴’는 근심이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면서 調身修行하는 것이며 ‘愛’는 通身으로서 일체 중생을 애민섭수하는 것입니다.

〈보충설명3〉 세상일에는 총애가 있지만 그 뒤에는 늘 치욕이 따릅니다. 사람들은 총애를 받으면서도 굴욕을 받으면서도 자주 놀랍니다. 총애와 굴욕을 통해 당면하는 이 우환들은 모두 신변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따르는 것입니다.

〈보충설명4〉 내 몸이 없다는 것은 사상(四相)이 없는 금강경 진리입니다. ‘나’라는 相, ‘남’이라는 相, ‘내 것’이라는 相이 없으면 근심 걱정이 붙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無)’하고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앞의 정심행선분에서 부처님께서는 四相을 여읜 상태에서 善法을 닦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四相을 여의고 닦는 善法은 곧 無記法이고, 또 無記法이기 때문에 보리의 싹이 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여기 福智無比分의 말씀을 이어 주십니다.

즉, 부처님의 설법은 음성을 빌려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有記이며, 또 비록 四相을 여의었어도 그 말씀은 菩提의 싹이 되어 복과 지혜가 비할 수 없이 많이 맺어진다는 함축된 내용으로 말씀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四相이 텅텅 비어 說하는 사람도 깨달을 사람도 한 모습입니다. 즉, 중생과 부처가 평등한 一相無相의 모습입니다. 四相을 모두 떨쳐낸 무소득의 청정심으로 정각을 삼고 무아무위의 평등심으로 선법을 닦고 실천하면 그 것이 바로 菩提를 얻는 것이며, 그 것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인 것입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안과 밖이 진리로 가득차면 높은 곳을 나르는 솔개나 낮은 물에서 헤엄치는 잉어가 서로 더불어 평등한 진리의 顯現이며 생동하는 묘유인 것입니다.

금강경의 지혜는 세간의 지식과 달라서 탕탕 비워야 우러납니다. 선과 악을 모두 떨쳐내고 이중부정의 대긍정을 통해 선법을 닦을 때 비로소 복덕과 지혜가 무량하게 우러납니다.

須菩提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 有人 持用布施 若人 以此般若波羅密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誦 爲他人說 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수보리여!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만큼 많은 칠보를 모아 어떤 사람이 보시한다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 내지 사구게 등을 수지독송하여 타인을 위하여 설하면, 앞의 복덕이 나중의 복덕에 비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셀 수 없을 만큼의 비유로도 능히 미칠 바가 못 되느니라.”

{冶父}千錐箚地 不如鈍一捺

천개의 송곳으로 땅을 파는 것이 둔한 가래로 한 번에 푹 파는 것만 못하다.

〈보충설명〉 금강경 사구게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은 頓法으로서 둔한 가래에 비유했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복을 쌓는 것은 漸法으로서 송곳에 비유했습니다.

麒麟鸞鳳不成群 尺璧寸珠那入市 逐日之馬不駝 倚天長劍人難比 乾坤不覆載 劫火不能壞 凜凜威光混太虛 天上人間摠不如 噫

기린과 봉황은 무리를 이루지 않는데, 어찌 한 자의 옥과 한 마디의 진주가 시장에 들어가리오. 해를 쫓는 말은 낙타와 나란히 하지 않고, 하늘을 의지하고 장검을 찬 사람은 가까이 하기 어렵도다. 하늘과 땅이 덮을 수도 실을 수도 없으며, 겁화도 능히 무너뜨리지 못하도다. 늠름한 위광이 태허공을 뒤덮으니, 천상과 인간에 비할 바가 없도다. 아아!

〈보충설명1〉 진리는 홀로 우뚝하기 때문에 기린과 봉황처럼 무리에 섞이지 않습니다. 또,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보배여서 시장바닥에서 팔리 듯 흔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할 바 없이 고고하고 드넓어 하늘도 그 자리를 덮지 못하며 땅도 그 자리를 실어주지 못합니다. 세상을 모두 태워 소멸시키는 불길이라 하더라도 진리를 허물어뜨릴 수 없습니다.

〈보충설명2〉 해를 쫓는 말은 頓法을, 낙타는 漸法을 비유한 것입니다.

〈보충설명3〉 하늘을 의지하여 장검을 찬 사람은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