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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재(豫修齋) 유감

기자명 법보신문

송 석 구
전 동국대 총장

금년은 음력으로 윤년이다. 그러므로 윤달이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윤달은 한 해에 한 달이 더 있다. 더 있는 달을 윤달이라고 하고 그 윤달이 7월이다. 윤7월은 망자를 이장한다든가 또는 삶의 불행한 일들을 없애주는 여러 의식을 베풀면 액땜을 한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7월에 이장을 많이 한다고 한다.

예수재는 불교의식으로 정착돼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재가 하나의 미신이고 불교의 전통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물론 그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불교는 마음의 깨달음을 그 본질로 하고 있는데 예수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예수재같이 인간의 마음을 의식을 통해 카타르시스 해주는 작업은 없는 것 같다.

종교는 의식을 통해 종교의 근본을 드러낸다. 예수재에 대한 여러 이론이 있지만 나는 예수재를 현대 종교의식으로 아주 멋진 작법이라 생각한다.

예수재란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여러 가지 죄업을 의식을 통해 미리 참회하고 죽은 후에 안락을 갖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뒤의 행복을 빌기 위하여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닦아 복업을 지어 소원대로 과보를 얻겠다는 의식이다. 그러기 위해 스님들을 청하여 경전을 읽고 의식을 실행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뒤의 자신의 재를 미리 드려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면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현생에 지은 빚을 갚아서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져 받아야할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자손창성 가내태평 재액소멸 무병장수 등의 기원을 명부의 염라왕, 도명존자 부독귀왕, 시왕, 판관, 사자 등에게 드리는 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재의 하이라이트는 보살들이 오랫동안 모은 시주돈을 내고 꽃가마를 타는데 있다. 보살들은 네 사람이 들고 절마당을 한 바퀴 도는 가마를 타고 앉아 하늘에서 내리는 꽃을 맞으면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의식인가? 농경사회에서 일만 하고 억압을 받아온 보살들이 결혼할 때 처음 타보았던 가마를 다시한번 타고 꽃비를 맞는 호강을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마음의 정화인가?

예수재는 오늘날 합리적인 사고에서도 과학적인 의식이기도 하다. 이때 꽃비는 하얀색의 조화(彫花)이다. 이 흰색 조화의 연원은 열자(列子)의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열자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을 상이한 두 요소, 즉 혼과 백으로 구분하고 이 둘이 조화상태에서 육체에 생명력을 넣어주고 육체를 유지시킬 때 인간이 살아있는 것이고, 혼·백·육체 3요소가 분리되면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을 때 혼과 백은 다른 기능을 한다. 혼은 인간의 행동을 지시하는 힘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신적 경험과 지적인 활력이 있다. 이에 비해 백은 몸통과 사지를 움직이게 하고 육체의 각 부분에 힘과 운동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혼이 가는 목적지는 신선세계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불사의 존재인 신선이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이 이상향이다. 이 이상향은 동쪽에 있는데 그 혼이 살 수 있는 섬이 봉래섬이다. 이 봉래섬의 봉래산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혼이 살 수 있다. 이 산의 모든 물건은 하얀색으로 이루어져 찬란한 빛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상에서 연원되어 예수재 때 꽃비를 내릴 때도 하얀 꽃으로 장식한다.

예수재는 죽은 뒤의 업을 소멸하기 위해 살아서 수행하는 의식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 죽음을 수행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죽음의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재는 의식을 통해 죽음의 멋을 꽃비로 장식하는 의식이요, 또한 수행을 연습시키는 의식이다.

예수재의 의의는 윤년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예수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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