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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절반은 남편, 나머지는 도반이 해줍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11년 도반 9쌍의 부부수행자 모임

<사진설명>11년째 수행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9쌍의 부부들은 최근 일산에 작은 수행처를 마련하고 참선과 경전공부를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부부의 인연을 전생에서 7000겁의 선근이 쌓여 만나는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생에서 부부로 만나 함께 불도를 닦아가는 이들의 인연은 얼마나 많은 선근들이 쌓여 만나는 인연일까. 좋은 도반을 남편으로 혹은 아내로 만나기도 어려울 진데 하물며 이러한 부부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면 이는 엄청난 선연(善緣)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인연이리라.

사찰에 가서 보살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남편 밥 차려 주느라, 아이들 수발하느라 절에 꼬박꼬박 나가기가 힘들다는 푸념을 털어놓는다. 특히나 남편이 불교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불심 약한 남편들을 불자로 만들다 못해 베테랑 수행자들로 만들어 함께 수행모임을 꾸려가고 있는 모임이 있다. 9쌍의 부부들이 10년째 함께 수행을 하고 있는 부부수행모임. 11년째 매주 토요일마다 모이는 이들 모임에는 그 흔한 단체명도, 회장도, 회칙도 없다. 우리 모임에 나오라고 아무도 권유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은 이들이 서로 함께 수행하는 모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11년째 함께 수행을 해서일까. 이들의 표정, 분위기에는 비슷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라서겠죠. 지금까지 아무도 이 모임이 반드시 꾸려져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이야기한 적도 없지만 친정집에서 형제자매를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아주 오래전,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함께 공부해나가는 것이 그렇게 편안하고 든든하거든요.”

이들 모임이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천왕사에는 ‘나이나 취향, 코드가 비슷한’ 30대 젊은 부부들이 몇 팀 있었다.

둘째 아이가 사천왕사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의 주지였던 현능 스님을 알게 된 박지영 씨, 독실한 남편을 따라 절에 다니게 된 이성인 씨, 불교학생회 출신인 류화숙 씨, 그리고 황경희, 정정숙, 홍은선 씨들도 비슷비슷한 이유로 사천왕사에 다니던 중이었다.

30대 취미 모임이 첫 출발

비슷한 또래의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현능 스님은 이들에게 탈춤놀이나 성지순례, 책읽기 모임 등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그렇게나 ‘죽이’ 잘 맞을 수가 없었다. 함께 탈춤을 배우고 지방의 사찰을 찾아다니고,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도 희한할 정도로 마음이 척척 맞았다. 자연히 이들을 중심으로 사찰 신도회가 꾸려졌고 이들의 모임이 거듭될수록 불교공부에 대한 열정과 함께 자연스럽게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사천왕사에서 모임을 갖던 이들은 남편들과 함께 화엄경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사천왕사에서 경전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면서 이 모임을 이어나가게 된다.

부부동반 모임이 되다보니, 남편까지 자연스럽게 불교공부를 하게 되고, 가정에서도 사찰에서도 함께 경책을 할 수 있는 도반이 바로 남편, 아내가 돼가고 있었다. 남편이 가장 든든한 도반이 되니,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까지 불교에 젖어들게 되어 어느덧 집안 전체가 불교 집안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사이 각자 아이의 학교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사를 하게 된 이들은 재적 사찰을 옮기게 되었고, 이들 모임 또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사찰을 다니면서도 여러 해 동안 여름휴가나 겨울방학 때면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남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같이 모여 공부해 보자는 이태영 씨의 제의에 따라 6쌍의 부부가 다시 모이게 되었다.

“선방 스님들도 공부의 반은 도반이 시켜준다고 말씀하시는데, 속세에서 살아가는 재가자들은 더더욱 버팀목이 돼줄 도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찰을 다니면서도 항상 그때 그 멤버들이 그립고, 수행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서로 다들 사찰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공통된 목표의식과 편안함 같은 것들이 큰 발심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수행 버팀목 찾아 다시 ‘뭉쳐’

<사진설명>인오 법사로부터 전심법요 강의를 듣고 있는 부부수행자들.

처음에는 공부할 곳이 없어서 한 회원의 개인사무실에 직원들이 없는 토요일 오후를 틈타 공부를 하기도 했고, 부암동 자성선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곳 또한 여의치 않을 때는 도반의 집에서 수행 모임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한 도반이 일산에 비어있는 집을 하나 구입해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 수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면 어김없이 모여 1시간 정도의 경행과 또 1시간의 참선을 마친 다음에는 경전강의를 듣는다.

이들이 지난 10여년간 공부한 경전만 해도 천수경, 반야심경에서부터 대승기신론, 선가귀감, 간화선, 달라이라마 자서전, 위파사나 수행법, 금강경, 아함경, 능엄경, 원각경까지 10여편에 이른다. 최근에는 인오 법사의 지도 아래 희운선사의 전심법요(傳心法要)를 공부하고 있다.

다시 모임을 갖게 된 후 함께 공부하는 식구가 9쌍으로 늘었다. 17년째 만나고 있는 초창기 멤버나 이제 만난지 서너 달 된 막내 팀이나 반가움의 무게는 별반 차이가 없다. 이는 분명 전생부터의 깊은 인연 때문일 것이라는게 이들 멤버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10여년 경전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면서 이들은 어느덧 베테랑 수행자들의 경지로 입문하고 있다. 내가 뒤처지면 누군가가 이를 이끌어주고, 다른 이가 앞서가면 그를 모범으로 삼아 더욱 정진하게 되다보니 어느덧 비슷한 수준의 수행자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 위파사나, 또는 복합수행법 등 각자의 근기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나가고 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수행법에 얼마나 충실하게, 그리고 불자로서 얼마나 여법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놓여있을 뿐이다. 도반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다른 이에게 바로미터가 된다. 함께 수행하는 이득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정재민 거사의 설명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많이 크고, 사회적 기반도 잡혀 다들 ‘살 만한’ 형편들이 되었지만, 그 과정 또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사에 부도가 나고, 때로는 명예퇴직자가 생기기도 했으며, 암으로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린 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들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으며, 또 그 사실을 항상 일깨워주는 도반들이 바로 곁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년전 이들은 농담처럼 “은퇴한 후에는 모두 출가를 하자”고 약속한 적이 있다. 아직 은퇴시기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그 약속은 아직 유효한 셈이다. 출가를 하든 하지 않든 이들은 그때도 함께 수행하고 정진하며 서로의 도반으로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수행법 서로 달라도 문제없어

“말년에는 작은 마을에 함께 모여 같이 살고 싶어요. 혹시 배우자가 한 명 죽더라도 다른 열여섯의 도반들이 곁에 있다면 훨씬 덜 외로울테고, 삶과 죽음의 공백을 메워가는 일 또한 훨씬 수월할테죠. 무엇보다 이들이 죽는 순간까지 불법을 지켜나갈 수 있는 커다란 등불이 되어줄테니까요.”

임종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켜주는 이를 인생의 반려자라고 한다면, 이들은 열여섯 명의 반려자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고 하셨는데,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등불인 도반들이 빛을 밝히고 있으니 은산철벽에 부딪힌들 두려울 것이랴.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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