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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한 이 사람은 분명 억겁을 함께한 제 도반입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위빠사나로 백년가약 진미한-강미금 부부

<사진설명>한국과 미얀마라는 먼 거리를 수행으로 이겨낸 미얀마인 진미한 씨와 한국인 강미금 씨 부부. 이들은 11월 5일 가양동 홍원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정이 좋은 부부를 천생연분이라 부릅니다. 천생연분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500억겁의 세월동안 천 번 이상을 사랑하고 헤어져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 오랜 행복과 고통의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만난 인연이기에 보는 순간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울 강서구 가양동 홍원사 법당을 가득 메웠던 지난 11월 5일. 목탁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이크를 손에 쥔 스님은 경건한 목소리로 “결혼식을 시작하겠다.”며 신랑·신부의 입장을 알렸다.

이날은 중국계 미얀마인 진미한 씨와 한국인 강미금 씨가 백년가약을 맺는 뜻 깊은 날이었다. 더없이 맑고 순진한 표정이 천진해보이기까지 한 신랑과 조금은 긴장했지만 행복한 표정의 신부가 입장하자 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두 인연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을 축하하는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신부보다도 수줍은 표정의 신랑은 연신 “네, 네”하며 웃음 짓는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았지만, 신부의 표정에서도 행복함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과 미얀마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던 이들의 인연은 참으로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2004년, 당시 강미금 씨는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며 처음 불교에 빠져들게 된 초보 수행자였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수행을 시작하고 정진을 거듭하던 미금 씨는 어느 날 미얀마 성지순례 공고를 접하고 그 자리에서 선뜻 참가를 결정했다.

“갑작스런 결정이었어요. 무슨 생각이 들어 미얀마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평생을 같이 하게 될 도반이 그곳에 있었기에 인연의 힘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나 봅니다.”

한 달의 기간을 예정하고 미얀마에 첫발을 디뎠지만 머나먼 미얀마의 낯선 풍경은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공항으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사람이 바로 지금의 제 남편이었어요. 그날 공항에서 처음 저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 익숙한 느낌을 가진 건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행하러 간 미얀마서 첫 만남

<사진설명>주례를 맡은 원명 스님은 이들에게 도반임을 잊지말고 끊임없이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처음 느낌이요. 글쎄요. 그냥 좋았다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진미한 씨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위빠사나 수행 1세대인 거해 스님과의 인연으로 1994년부터 1년간 홍원사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배운 바 있는 진 씨는 자신의 고국 미얀마를 찾은 한국인들의 안내와 수행 뒷바라지를 한 달간 도맡아 해 주었다. 낯선 미얀마의 수행처인 쉐오민 선원에서 수행을 시작한 미금 씨에게 그런 미한 씨는 커다란 의지처가 되었다. 한국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접해보긴 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미금 씨를 살뜰히 도와주는 이 익숙한 느낌의 남자에게 미금 씨의 마음은 물처럼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미한 씨는 불교국가인 미얀마 사람답게 생활의 모든 것이 수행이었어요. 가정집에 부처님을 모실 정도로 신심 깊은 미얀마인들은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죠. 미한 씨도 그랬어요. 저보다 많은 수행을 해온 미한 씨와 가까워지면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수행에 있어서는 초보자나 다름없는 미금 씨에게 그는 좋은 스승이자 도반이 되어주었다. 스승에게 물어 볼 수 없는 소소한 어려움을 미한 씨는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도와주었고 불과 한 달의 시간 동안 둘은 수 많은 생을 함께 하며 쌓아온 인연을 기억해 내듯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미금 씨는 귀국한 이후에도 계속 위빠사나 선원에 나가며 수행의 깊이를 더해갔다. 미금 씨의 수행이 깊어질수록 도반이 되어주었던 미한 씨에 대한 그리움도 더해갔다.

“수행에는 도반이 가장 큰 스승이라고 했는데, 제게는 아마도 미한 씨가 그런 도반이자 스승이었나 봅니다. 수행에 어려움이 생길 때면 스승을 찾듯 미한 씨가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활과 수행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수행이 깊어짐을 확인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도 더욱 깊어져갔다.

“한 때는 그리움이 수행을 방해하는 듯 싶었어요. 호흡을 할 때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내 마음을 바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 역시 바르게 바라보고 올곧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자 수행과 사랑 모두가 행복한 과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기 힘들 것만 같아 보였지만 그들의 인연은 역시나 지중한 것이었나 보다. 미금 씨가 수행을 하던 한국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마치 ‘미금 씨를 위해서’인 듯 1년에 한 번씩 미얀마 현지 수행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미금 씨는 수행프로그램에 동참하며 그리운 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난 회수는 고작 3번 뿐. 결혼을 결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여다.

“전생의 인연이 아니고서는 저 역시 설명할 길이 없네요. 오랜 시간 서로 마음을 나눴다고는 하지만 직접 만나 본 것은 고작 3번뿐이니.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인연이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딱 3번 만나 … 인연이란 이런 것

<사진설명>결혼식을 마친 부부는 부모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미한 씨는 지난 10월 24일 한국에 들어왔다. 미금 씨 부모님과의 상견례를 위한 자리였고 미한 씨를 직접 만나본 부모님들은 불과 3일 만에 결혼을 승낙해 주었다. 그리고 이날 한국과 미얀마에서 각기 태어나고 자란 이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이자 도반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례를 맡은 원명 스님은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은 도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틈틈이 선정을 닦다보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수행을 통해 맺어진 이들 부부에게 이날의 주례는 평생 지녀야할 계율이자 수행의 지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제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한 몸처럼 살아가게 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 하다. 이들은 새로운 출발의 보금자리로 미얀마 양곤을 택했다. 미한 씨의 직장을 고려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수행을 계속하고자하는 미금 씨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남편이 된 미한 씨는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하는 아내가 걱정이지만 미금 씨는 수행에 매진할 수 있는 미얀마에서의 생활이 벌써 부터 손꼽아 기다려진다. 이들 부부는 11월 16일 미얀마로 출국할 예정이다.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이순간의 삶에 충실한 것이 수행자의 삶 아닐까요. 미얀마에서 함께 생활하며 수행할 수 있는 도반이 있으니 우리 정말 행복하게 살겠죠?”
신혼의 달콤함보다 더 향기로운 도반의 향기에 흠뻑 빠져 있는 이들의 환한 웃음에 500억 겁을 이어온 인연의 깊이가 더해진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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