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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묘향산 보현사

기자명 이학종

북한불교의 법회의식 남쪽 그대로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멀리 남쪽에서 오신 평불협 대표단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보현사 주지 청운 스님의 표정과 말투는 남쪽 노스님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오랜 기간 동안 묘향산에서 수행해온 스님임을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다. 주지 스님의 따듯한 환대는 포근한 보현사 풍광과 어우러져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 편안함을 주고 있다. 아마도 부처님의 일불제자라는 정신적 연대감 앞에서는 반세기 분단의 질곡도 맥을 출 수 없는 모양이다.

묘향산 보현사는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뛰어난 건축술로 지어진 목조건물들이 보전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사적이 있는 사찰로 잘 알려진 도량이다. 묘향산 어귀의 향산천 기슭에 들어앉아 많은 산내 말사와 암자를 거느린 북한 제일의 대찰이다. 자오선 축을 따라 첫 문인 조계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해탈문, 천왕문, 9층탑, 만세루, 13층탑, 대웅전이 전개된 전형적인 대도량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 그 좌우로 종각과 관음전, 영산전 등 갖가지 당우가 즐비하게 펼쳐져 자리 잡고 있다. 보현사의 여러 건물들 중에 가장 높은 건축술을 자랑하는 것은 역시 대웅전(옛 이름은 보광전)이다.



유점사 종 울리며 불보살과 묘향산신에 입산'신고'

'신행생활 하느냐' 묻자 '틈틈이 법당 찾아 기도'

우리 일행은 청운 스님의 안내로 종각으로 향했다. 남쪽의 불자들에게 타종의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이다. 타종의 의미는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음을 보현사에 주석하는 제불보살님과 묘향산의 산신에게 알리는 것일진대, 단 한번도 범종을 쳐보지 못한 터라 가벼운 흥분마저 일어난다. 남과 북의 불자들이 함께 당목을 부여잡았다. 맘껏 끌어당긴 당목이 되돌아가 당좌에 닿는 순간 뎅~ 웅장한 굉음이 고막을 울린다. 산천을 울릴 듯한 소리인데도 가슴은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필시 범음(梵音)만이 갖는 불가사의한 위력일 것이리라.

7번의 타종을 마친 후 범종을 찬찬히 돌아봤다. 이 종은 16세기 경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조선종으로,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전소된 금강산 유점사의 종을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이곳으로 옮겼다. 집중적인 폭격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큰 손상은 입지 않았다. 종두의 귀면 조각과 면에 새긴 보살의 모습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종의 규모가 커서 옮겨오는데 적지 않은 애로가 있었다고 청운 스님은 설명한다.


청운 스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현사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히 경내를 오갔다. 지나는 이의 눈에는 미친 사람으로 보일만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포착해야 할 텐데.' 평소 촬영 솜씨가 썩 좋지 않았던 터라 염려가 앞선다. 그러나 어쩌랴, 한 컷이라도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많이 찍어대는 수밖에.

'저어기, 이 선생. 지금 법당에서 보현사 스님과 불자들이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북남 불교도 공동법회'를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먼저 법회를 보고 나중에 경내를 돌아보도록 하지요. 사진도 그때 찍으시고.' 주지 스님의 재촉을 듣고서야 촬영을 중단하고 법당으로 향했다. 북녘에서의 첫 법회를 여는 것이니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급해 그 유명한 법당은 채 돌아보지도 못하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에는 약 70여명의 불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그러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북한의 불자들은 발가락을 에이는 차디찬 마루바닥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스님들도 눈에 띄었는데, 회색 승복을 입은 주지스님과는 달리 군청색 한복에 홍가사를 둘렀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추웠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북한의 불자들이 있어 법당 안에는 훈훈한 기운이 충만하다.

3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제작 시기는 얼마 되지 않은 최근의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없어 보인다. 좌대나 불단도 조잡한 것이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는 집은 더없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데, 정작 안주인은 품격이 떨어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정각 2시에 법회가 시작됐다. 법회의식은 헌향,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찬불가 합창 등 남쪽과 동일하다. 이 법회에서 평불협 대표단 중 맡은 소임이 헌향이라 부처님 전에 가까이 가서 정성껏 향을 올렸다. 찬불가는 순박하게 생긴 앳된 처녀불자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불렀는데, 이런 이곳의 불자들은 3절까지 다 부르는 게 아닌가. 늘 1절만 불러왔던 터라 가사를 몰라 당황스럽다.

노래를 마칠 때까지 좌불안석이다. 맨 앞줄에 섰기에 망정이지 가사를 제대로 몰라 얼버무리는 걸 북한의 불자들이 보았더라면 '남쪽의 불자들은 엉터리'라는 창피를 톡톡히 당할 뻔했다. 반야심경의 독경운율도 남쪽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도일체고액'의 경우 '도 ~ 일체고액'으로 첫 글자를 길게 빼고 나머지를 고른 톤으로 외는 형식이었는데, 가지런한 느낌을 주는 것이 듣기에 편하다.

찬불가를 마친 후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 스님이 '평불협 대표단의 보현사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북과 남의 불자들이 힘을 모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고수 실천함으로써 통일에 앞장서자'는 요지의 환영사를 했다. 평불협 대표단 대표 설송 스님의 '남과 북의 불자들이 통일과 민족자존 수호에 앞장서자'는 답사에 이어 '우리는 하나'라는 최근 북한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로 법회가 끝났다. 이어 법당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는데, 늘 보도용 사진에서 보던 그 광경을 직접 경험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법회순서나 찬불가 등 일체의 의식이 남한의 불교와 똑같아 신기하기도하고 반갑기도 하다. 남쪽의 불교를 그대로 도입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남쪽의 불자들이 좀더 반듯하게 신행생활을 해야 북한의 불교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겠다는 의무감이 불현듯 일어난다.

법회를 마친 후 서둘러 북한 불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코디언 연주를 한 처녀를 만나기 위해서다. '참 예쁘고 솜씨가 좋다'는 칭찬으로 말을 건네자 수줍은 웃음을 짓는데, 추위로 발개진 두 볼과 어우러진 표정이 참 예쁘다. 이름은 김종임, 나이는 이미 (고등)학교를 마친 어엿한 숙녀란다. 법회 때마다 연주를 도맡아 하는데, 아마도 절에서 일하는 종무원인 듯 하다. 또 다른 불자들에게 실제로 신행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니, 틈나는 대로 절에 올라와 기도를 하고 있다고 답한다.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부터 경내를 찬찬히 돌아보자'고 재촉하는 일행을 좇아가느라 '다시 만나자'는 약속만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보현사=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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