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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손 맞잡으니 ‘가족’ 숲에 안기니 장애 ‘훌훌’

기자명 법보신문

청소년회 봉사자-승가원 장애우, 가을 산행하던 날

<사진설명>청소년회는 승가원 소속 다운증후군 장애우들과 함께 단풍 고운 서울 인근의 산으로 산행을 떠났다.

산 전체가 색색 고운 물감에 물들은 듯 단풍이 고왔던 11월 12일. 도봉산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손을 맞잡고 조심조심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뒷모습만 보면 어린 동생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단풍놀이라도 나온 듯하지만, 얼핏 보아도 아이들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것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완만한 경사길을 고작 500미터쯤 올라왔는데 아이들이 벌써부터 힘겨워한다. 평탄한 아스팔트길인데도 불편한 걸음으로 경사로를 오르기는 역시 힘들었나보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초조해진다. ‘아이들이 산행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꺼예요. 조금 있다 숲에 대해 설명해줄 분들이 오시면 우리 숲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요.”

500미터 걸었는데 벌써 ‘헉헉’

걱정은 기우였다. “쉬어가자”는 인솔자의 말에 힘겨워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산행에 나선 아이들은 사회복지 법인 승가원(이사장 종범 스님) 장애아동시설에서 생활하는 다운증후군 장애우 8명이다.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 아니 일년의 대부분을 시설 내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가을 산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대한불교청소년연합회(총재 현성 스님·이하 청소년회)가 마련한 ‘장애우와 함께 하는 가족 산행’ 행사에는 자원봉사자로 나선 한양대 학생 4명과 고등학생 봉사 단체 ‘그린비’ 회원 등 모두 27명이 함께 했다.

산행에 앞서 장애우 1명과 자원봉사자 2명을 한 팀으로 조구성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쉽게 기억하기 위해 각자의 명찰에 별명을 적어 넣었다. ‘고구마’를 연신 외치며 다니는 장애우 기남이의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명찰에 ‘감자’를 적자 이에 뒤질세라 다른 팀에선 ‘미녀’와 ‘야수’를 자청했다. 그 옆에선 ‘도봉산’과 ‘애벌레’가 팀을 이뤘다. 고구마와 감자, 미녀와 야수, 도봉산과 애벌레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이날 하루 ‘가족’이 되었다.

오늘 하루 뿐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과 함께 산행에 나선 장애우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나뭇잎 하나, 바위산 하나도 그저 신나고 새로운 경험이다. 이들의 산행을 돕고자 도봉산 국립공원에서는 숲 해설가 3명을 배치했지만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숲에 푹 빠져 있었다. 숲과 나무에 관해 열심히 설명하는 숲 해설가의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딴청을 부리더니 빨간 단풍잎을 선물이라며 불쑥 내민다. 한쪽에선 플라타너스 잎을 모아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쓰고는 “왕이 됐다”며 함박 웃음을 터뜨린다. 색색의 단풍으로 뒤덮인 숲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나 봐요. 봉사자들을 친형, 친누나처럼 여기며 안기고 매달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마치 ‘사랑해 달라’고 조르는 아기들 같아요.”

자원봉사자들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두 팔을 벌려 힘껏 아이들을 안아준다.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맞닿은 가슴 사이에서 ‘가족 산행’이라는 명찰이 서로 입을 맞춘다.

매달리고 안기며 “형-누나”

한 걸음씩 발길을 옮길 수록 가파른 산길이 점점 더 험해진다. 자원봉사자와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좁은 오솔길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행여 아이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형, 누나들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한시도 장난을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아이들도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동안 가을 산길엔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온다.

하지만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에게 산행은 무리였나보다. 가파른 비탈길을 묵묵히 오르던 아이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힘겨운 표정이 역력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주저앉는 아이들이 생기는가했더니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주저 앉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화를 내듯 다그친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조금만 더 올라가자고. 발음조차 정확하지 않은 아이들의 말소리는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서로를 격려하는 이들의 마음만은 고스란히 전달됐다.

“주홍이예요. 승가원 내에서도 늘 다른 아이들을 챙기는 맏형같은 존재죠.”

승가원 박철우 씨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대견스런 눈길로 주홍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만큼은 자원봉자사의 도움보다 주홍이의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이되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산행을 시작하지만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몸이 불편하고 학습능력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맑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고, 힘들때 주저앉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이끌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원봉사자로 왔던 저희들이 더 많은 것을 배워가게 되지요.”

이번이 세 번째 자원봉사라는 박정균(한양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 3학년) 씨는 “처음에는 그냥 봉사점수나 얻어 볼까하는 생각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으로 교감하고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됐다”며 “장애우들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천진불처럼 깨끗한 마음의 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저들의 몸을 붙잡고 있는 장애가 아니라 저 아이들의 몸을 멀리 밀어내려고하는 주변의 냉랭한 시선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며 정상으로 이끌어 주는 저 아이들은 단 한번도 자신의 장애 때문에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부자유스러운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겁을 집어먹는 이들이야 말로 마음 한 켠에 장애를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쉬어가자”는 말에 아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당바위’에 털퍼덕 주저 앉는다. 한참을 올라온 듯 했는데 이정표를 보니 이제 겨우 3km쯤 왔다. 이곳은 분명 도봉산 산행의 초입이지만, 이들에게는 에베레스트 정상만큼이나 높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마당바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뿌듯함이 흠뻑 묻어난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본 적이 없었다.

봉사하러 왔다 “배우고 가요”

<사진설명>장애우들은 이번 산행을 통해 세상의 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굵은 땀방울과 거친 호흡을 이겨내고 이렇게 높이 올라왔다. 눈아래 내려다보이는 세상이 이 순간 만큼은 오롯이 이들의 것이다. 묵묵히 산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느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산길을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더 힘들었다. 균형을 잡지 못해 자꾸만 넘어지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산행 내내 자원봉사자들과 장애우들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산길을 다 내려가면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산길을 다 내려와서도 좀처럼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꼭 다시 만날거야. 약속!”하며 새끼손가락 걸고 손도장까지 찍어 놓은 후에야 자원봉사자들은 돌아설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두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는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꼭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눈길이 자꾸만 뒤를 향한다.

“10월 28일부터 11월 19일까지 네 번에 걸쳐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가족 산행’을 실시했습니다. 늘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자 기획한 행사인데 즐거워하고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좀더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우들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가을 산의 단풍조차 마냥 신기한 풍경이다. 어느 누구도 이 아이들에게 산행을 권하지 않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넉넉한 가을 숲은 아무런 차별없이 장애우 아이들을 받아주었다. 그렇기에 승가원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짧은 산행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벌써부터 내년 가을에 대한 기다림이 진득히 묻어났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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