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뜻 배제된 인위적 ‘연명’ 횡행
환자 뜻 배제된 인위적 ‘연명’ 횡행
  • 법보신문
  • 승인 2006.11.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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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존엄사
김 건 열 전 단국대의료원 의료원장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존엄사’라는 주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개념이 아닙니다. 하지만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을 의학자로 살아오며 제가 느낀 것은 세상에는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고 원인을 모르는 병 또한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고령으로 돌아가시는 경우 고칠 수 없는 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점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만큼 현대 의학은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으며 그런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헌대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 최대의 의료송사인 ‘보라매 병원 사건’이 촉발됐습니다. 이 사건은 치료 불가능한 환자 즉, 인공호흡기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를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귀가 조치한 후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했는데 이후 환자가 사망하자 사망한 환자의 친인척이 보호자와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소해 담당 의사에게 살인죄가 판결된 우리나라 최대의 의료소송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보호자는 환자의 귀가조치를 요구하며 ‘이후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 병원 측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 작성했으나 법원은 고발자인 사망자 누이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호자였던 사망자의 부인과 담당 의사에게 유죄를 판결했습니다.

존엄사-안락사 혼돈 말아야

이 사건에서 환자가 사망한 이유는 호흡기 관련 질환이었습니다. 저 역시 호흡기 내과 전공자여서 이 사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의료법에 반드시 존엄사에 관한 부분이 체계화돼야하고 사회적으로도 존엄사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흔히 존엄사는 안락사와 혼돈돼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존엄사와 안락사는 매우 다릅니다. 존엄사는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자력으로 호흡이 불가능한 환자라 하더라도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이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곧바로 사망하는 것이 자명한데도 보호자의 요청 등으로 인해 이러한 생명 유지장치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를 ‘연명치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인공적인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수분-영양 공급, 통증 관리 등의 ‘완화의료’만을 통해 자연사의 경과를 밟게 하는 것이 존엄사입니다.

이는 안락사와는 다릅니다. 안락사는 약물을 투여하거나 자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등의 방식을 이용해 환자가 원래 수명보다 일찍 사망에 이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이는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완화치료만을 지속하는 존엄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존엄사는 이처럼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통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환자가 존엄하게 자연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공호흡기 매단채 사망

인간의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탄생이 존중되고 축복 되듯이 인간의 죽음 과정도 생명의 한 과정으로 인식되어 존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하고 있는 현대 사회는 존엄사에 관해서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을 정리해야할 시점입니다. 법과 의료 체계, 시민사회와 지역사회 사이의 공감대를 하루 속히 이뤄냄으로써 의료 문제 및 복지 문제에 관한 돌파구를 찾아내야 하는 시급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탄생이 존엄하듯 죽음은 평화로운 가운데 존엄하과 신중함을 갖춘 이 세상으로부터의 단순한 퇴장이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고통이나 괴로움, 무서움 등이 없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의식 수렴’이 부족했고 ‘죽음 문화’는 없이 들뜬 세상에서 말초적 쾌락만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준비 없는 죽음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미국인 10명 중 7명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고, 병원 사망환자의 3분의 1은 사망하기 전에 적어도 10일간은 중환자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그 중 절반은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심신의 고통 속에서 막대한 의료비를 짊어진 채 사망한다고 조사 발표됐습니다.

존엄사는 말기의 불치병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유보 또는 중단암으로써 초래되는 죽음, 즉 자연사의 임종과정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중시되며 효과 없는 연명치료를 계속함으로써 부가적인 고통만이 환자에게 가해지는 것을 피한다는 ‘임종환자 존엄’의 뜻과 ‘환자의 권리 존중’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점이 ‘연명치료중단’을 ‘치료 중단’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연명치료는 중지하더라도 통증관리나 생리기능 유지 등의 완화의료 시술을 계속해 자연적인 임종을 환자의 뜻에 따라 존엄스럽게 맞이하도록 해준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안락사는 환자가 감내할 수 없고,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환자 본인 이외의 사람이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할 물질(약물)을 투여하는 등 인위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연적인 사망 시기보다 빨리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할 때마다 이처럼 존엄사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요구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존엄사’와 ‘안락사’가 혼용돼 거론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많은 혼선을 일으켜 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존엄사’와 ‘안락사’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의료 임상적으로는 물론이며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실로서 변호되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우리나라의 법정논쟁이 법원에 의해서 최초로 판결이 났던 ‘보라매 병원 사건’의 법원판결문 가운데 제2심인 서울 고등법원의 판결문(2002년 2월 7일)을 살펴보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행위의 중지는 환자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진지한 치료중지 요구에 응하여 의사의 양심적 결단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고…’라 하여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체계가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의료체계간 혼란이 문제

이 사건에서 담당 의사들에게 살인죄(살인방조죄)가 판결되었던 주된 원인은 담당 의사들이 ‘절차적 정당화 수순’을 밟지 않았다는데서 비롯됩니다. 절차적 정당화 수순이란 치료 중단에 앞서 윤리위원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음으로써 연명치료의 중단을 법적으로 정당화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만약 담당 의사들이 피해자의 생존 가능성 및 더 이상의 치료행위가 의미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점까지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하고 동료 및 선배의사와 의논하거나 병원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여러 가지 검증 절차를 통하여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한계 상황에서 환자 자신의 이익과 의사를 고려한 양심적 결단에 의한 퇴원을 시킨 것이었다면 법원으로서도 그러한 의료인의 결정을 존중할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법체계는 절차적 정당화를 거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유사사건의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병원윤리위원회의 구성과 활성화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사전의료지시서’라는 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임종의료시에 환자가 원하는 진료의 형태를 명시해 놓은 서류입니다. 이는 환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서 장차 스스로의 판단능력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자신이 받게 될 치료 내용에 대해서 자기의 소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일종의 유언과 같은 형태이지만 그 내용에는 자신에 대한 의료 행위의 명시, 대리인의 지명, 심폐소생술의 거절, 원하지 않는 치료행위의 거절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서 지시할 수 있습니다. 사전의료지시서 등의 절차를 거치면 우리는 존엄사라는 우리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사전의료지시서가 현재 병원에서 의사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라도 단 하루라도 생존을 더 연장시키려는 것이 의사들의 보편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를 제출하면 의사는 당연히 이것을 환자 관련 차트에 첨부해야 합니다. 법이 보장하는 환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병원윤리위원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됩니까
병원윤리위원회는 의사 등 전문가와 종교인, 법률전문가, 지역사회 유지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윤리위원회 구성원으로 들어가 간혹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 건 열 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내과학교실 교수, 단국대의료원 의료원장, 대한노인병학회 회장, 대한결핵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부터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직전까지 18년 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11월 2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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