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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로 회향하는 인생의 2막 1장

기자명 법보신문

오 상 숙 - 변 창 임 부부의 노년일기

<사진설명>오상숙 거사는 “10년 째 무료급식봉사를 하는 아내야 말로 불보살의 모습”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자네 오늘 복지관 가는 날이지? 이따 복지관에서 봄세.”
“어머님 잘 모시고 가세요. 설거지하고 얼른 뒤 따라 갈께요.”
벌써 3년 째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집 현관에서 오가는 대화다. 여느 부부의 일상적인 대화인 것 같지만 이 작은 삶의 한 토막은 어느 불자 부부의 아주 특별한 노년일기의 시작이다.

3년 째 부부가 함께 봉사

변창임(60·보리심) 보살은 화요일이 조금 분주하다. 평상시처럼 일어나 『천수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경하는 것 외에 어느덧 생의 한 부분이 돼버린 무료급식봉사를 갈 채비를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식들의 아침을 챙기고 발걸음을 재촉해 군포매화종합복지관(관장 수현)으로 향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복지관이지만 오전 10시까지 도착해야 복지관에서 무료로 점심을 드시는 150여 분들의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

변창임 보살이 복지관에 들어서서 맨 처음 찾는 곳은 치매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된 매화노인복지센터이다. 6년 째 치매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니가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남편 오상숙(67·벽담) 거사가 치매 어르신들에게 마사지를 해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 오셨어요? 여보, 오늘도 수고하세요.”
“수고는 무슨…. 점심 준비하는 자네가 고생이지.”

35년의 세월을 함께 한 탓일까. 짧은 대화지만 부부의 정이 진득이 묻어난다. 변창임 보살이 조리실에서 점심 준비에 바빠질 무렵 오상숙 거사도 분주해진다. 오전 10시쯤이면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러 간 차량이 속속 복지관에 돌아온다. 치매 어르신들이 복지관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신발 정리하랴 옷가지 정리하랴 오상숙 거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따뜻한 율무차를 타는 것도 오상숙 거사의 몫. 혹여 분말가루가 목에 걸려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분말가루가 다 녹을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못하는 오상숙 거사의 손길엔 정성이 가득하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자, 오상숙 거사는 살갑게 이름을 부르며 말을 붙인다. 자연스럽게 어르신들 곁에서 어깨며 손을 주무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아들이다.

“어머니 어제 본 영화가 뭐였지요? 재미있었지요?” “어제? 글쎄…. 오메, 오메 시원한 거. 거기, 거기가 쑤셨었어.”

금세 기억을 놓아버리는 치매 어르신들이기에 어제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결린 곳을 주무르면 어느새 오상숙 거사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그렇게 센터에 있는 어르신 20명의 쑤신 곳을 다 주무르고 나면 활짝 핀 웃음처럼 깊게 패인 그 분들의 주름까지 펴진 것 같아 힘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가 불쑥 “친절한 늙은이 양반,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실 때면 오상숙 거사는 손수건으로 어르신들 몰래 눈가에 고이는 눈물로 향하는 것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오상숙 거사의 기억은 불현듯 5년 전으로 줄달음질 쳐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불현듯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

<사진설명>변창임 보살은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친 것은 어머니의 기도 공덕이라며 남은 인생을 봉사로 회향하겠다는 남편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할머니! 거긴 어떻게 나가셨소? 문 좀 열어주시구려. 나도 그쪽으로 가고 싶으니….”

2001년이었다. 아침이면 늘 『천수경』을 독경하시던 어머니가 거울 속 당신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말씀을 건네시더니 결국 자신과 며느리도 못 알아보게 됐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부처님께 기도드리며 강남 구룡사며 연꽃마을 연화사 등지를 다니시던 어머니. 33년 동안 군인으로 공직생활을 하며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지 못했기에 오상숙 거사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반야심경』을 같이 외우곤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따르시던 각현 스님이 인사를 건네도 못 알아보시더군요. 그나마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부처님의 가피지요.”

자상하던 어머니이자 시어머니의 치매로 오상숙, 변창임 부부는 3년을 눈물로 보냈다. 결국 오상숙 거사는 2004년 어머니와 함께 아내가 봉사활동을 나가는 매화복지관을 찾았다. 아내가 치매 어르신들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돌보는 노인보호센터가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오상숙 거사는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점심 전까진 수발을 들며 어머니의 손발을 주물러 드렸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센터를 이용하는 20명의 치매 어르신들에게 친절한 안마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오상숙 거사가 변창임 보살에게 그날그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남편이 언젠가부터 복지관에 다녀와서 ‘오늘은 순덕(가명) 할머니가 아침을 잘 잡수셨는지 센터가 떠나가게 트림을 하시더라’며 웃더군요. 즐거운 모양이에요. 벌써 3년 째 어르신들하고 지내잖아요. 한번은 그 동안 탈 없이 공직생활을 마친 것이 어머니의 기도 공덕 덕분이라며 이제 이렇게 보답하면서 여생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봉사는 어머니 공덕의 보답

요즘 변창임 보살은 오상숙 거사 이야기만 하면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러자 질세라 오상숙 거사가 “10년 째 무료급식봉사를 하는 아내가 불보살”이라며 치켜세운다. 변창임 보살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지만 알콩달콩한 부부금술에 자식들이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TV를 보다 한 스님이 ‘불자들은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불심을 회향해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나선 것뿐이에요.”

변창임 보살이 무료급식봉사를 나가게 된 것은 집안일을 하다 TV를 보고 적어 놓은 전화번호 때문이다. 잊고 살던 그 번호를 몇 달이 지나고서야 찾아서 전화해 보니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었단다. 변창임 보살은 그 길로 간병인, 발 마사지 교육을 수료했다. 그리고 조계종 직할봉사단 한마음회에 가입, 1997년부터 구로복지관에서 식판을 들고 오는 분들께 따뜻한 밥과 함께 사랑도 담아 드렸다. 한마음회 활동이 어려워지자 2003년부터는 혼자서 매화복지관에서 밥을 푸고 있으니 공양주 보살 팔자인가 싶다.

“절에만 다니는데 보살이라고 불리는 것이 쑥스러웠어요. 이제는 법당에서 예불을 드릴 때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요. 뭔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같아서요. 그 때 그 전화번호를 본 것도, 다시 찾은 것도 다 부처님이 맺어 주신 인연이에요. 호호호.”

식판을 든 분들의 눈빛만으로 알아서 척척 밥을 퍼주는 변창임 보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냄새처럼 불심까지 맛나다.

불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밥을 퍼 주는 아내 변창임 보살과 어르신들의 고된 삶의 주름을 펴는 남편 오상숙 거사는 봉사를 주제로 인생의 2막 1장을 펼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을 봉사하며 살겠다는 서원을 세운 오상숙 거사와 변창임 보살. 억겁의 인연을 봉사로 회향하는 이들 부부가 써 나가는 노년일기 한 줄과 부처님 말씀은 분명 다르지 않을것이다.
 
군포=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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