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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과 고인

기자명 법보신문

남궁 영
동아방송대 교수

무간도는 열반에 이르는 네 길〈가행도, 무간도, 해탈도, 승진도〉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영화 ‘무간도’에서는 ‘『열반경』’ 제19권에 따르면 가장 심한 지옥이 무간이며,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무간도는 번뇌를 끊고 진리를 체득하는 단계로, 막힘이 없는 경지를 이른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왜 진리를 얻는 단계가 무간지옥이란 말인가. 이 통과제례를 거쳐야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진리의 길은 고행을 수반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는 말인가.

중생들은 진리의 깨달음은 고사하고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조차 가져볼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영화에서는 어떨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처절한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자신의 삶을 무간지옥에 던져 넣은 젊은이들이 뒤틀린 삶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가 ‘무간도 시리즈(1 2 3)’다.

왕가위 감독 밑에서 촬영을 담당했던 유위강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맥조휘 감독이 만든 홍콩 느와르의 결정판 ‘무간도’ 시리즈는 1997년 7월 1일 반환을 전후한 홍콩인들의 처절한 자아 찾기가 깔려 있다. 그러기에 홍콩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홍콩인의 특수한 환경을 너머 보통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 중생의 자아 찾기, 프로이트가 말하는 자아(ego)와 원자아(id)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대중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하겠다.

홍콩 영화 ‘무간도’ 시리즈가 미국에서 ‘디파티드(The Departed)’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홍콩 느와르의 스승이며, 뉴욕을 배경으로 가장 뉴요커다운 영화를 만들어 온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동양에 흠뻑 빠진 브레드 피트가 제작한 영화가 ‘디파티드’다.

무간도 시리즈를 허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적 관심과 더불어 동서양의 정신적·정서적 표현 양식이 어떻게 전이될 수 있는가에 궁금증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하물며 허리우드 느와르의 대가이자 뉴욕 뒷골목 삶의 표현자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동한다니 기대는 배가 되었다. 그리고 기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뉴욕에서 보스톤으로 무대만 옮겼을 뿐이지 마틴의 연출 솜씨는 하나도 녹슬지 않았으며, 명배우들의 최선을 다한 연기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왠지 성에 차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무간도’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이미 보아서 일까. 아마 ‘무간도’를 보지 않고 ‘디파티드’를 보았다면 역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 찬사를 보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무간도’가 갖는 동양의 개념을 서양에서는 풀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디파티드(故人)’다. 제목에서부터 자아 찾기의 고행은 사라지고,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의 전투 냄새가 배어난다.

‘디파티드’는 보스턴 갱들의 암투와 도시 뒷골목 삶의 부조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마틴 스콜세지의 전매특허다. 그러나 이제 70이 다 된 잭 니콜슨의 연기는 거세를 앞 둔 당나귀처럼 천방지축이다.

꽃미남의 원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양조위의 우수에 찬 연기를 대신 할 수 없었으며, 진지한 맷 데이먼 역시 복잡한 심리연기에서 유덕화를 따라 잡지 못했다.

‘무간도’의 영화적 해석은 ‘사이가 없는 길’이다. 어찌 나(ego)와 나(id) 사이에 공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공간은 존재하며, 그 곳에 빠지면 지옥 중의 지옥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지 않는가. 거짓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를 찾았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것이요, 그런 고행의 결과 얻는 것이 진리요, 진리는 결코 고행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영화를 해석할 때 그 영화의 배경에 놓인 정치적·문화적 환경을 떠날 수는 없다. ‘무간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치적 대립, 자아 찾기의 불교적 여정을 그렸다면, ‘디파티드’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생존경쟁, 종교적 냉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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