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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의 禪 … 線, 유럽에 알릴 거예요”

기자명 법보신문

헝가리에 한국 사찰 짓는 청 안 스님

<사진설명>헝가리에 한국식 전통 사찰을 짓고 있는 청안 스님은 한국에 올때마다 사찰들을 다니며 '전통 마감'을 느끼고 배워 나간다.

“어서 오세요. 절이 너무 아름다워요”

풍경 좋은 곳에서 만나자더니 눈 푸른 스님은 벌써 성북동 길상사에 도착해 아름다운 사찰 경치에 푹 빠져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라는 청안(淸眼) 스님. 스님은 몇 년 동안 길상사가 많이 변했다며 “한 바퀴 돌아보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국의 사찰에는 아시아권의 어느 나라 사찰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차분함이 있어요. 이 차분함은 한국의 선 수행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사찰 건축에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상사 뒤편 토굴에서 정진 중인 수행자들에게 방해될까 스님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한국사찰 예찬론’을 들려줬다. 얘기를 이어가며 사찰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스님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청안 스님은 자신의 모국인 헝가리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살린 한국 사찰 ‘원광사’를 짓고 있다. 해외에 지어지는 한국식 전통사찰은 미국 태고사에 이어 원광사가 두 번째, 유럽에서는 처음이다.

1990년대 한국에서 출가자가 되기를 원했던 많은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청안 스님도 세계에 한국불교를 널리 알렸던 숭산 스님의 제자다.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헝가리 국적의 그가 생소하기 그지없는 한국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1년. 우연한 기회에 숭산 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끝없이 찾아 헤맸지만, 어느 종교나 철학도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폐부를 찌를 듯 날이 서있던 니체의 외침도, 깊은 고뇌의 산물이었던 하이데거의 존재론도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존재의 의미’에 목말라하던 스님에게 어느 날 ‘조지(George B.)’라는 절친한 친구가 ‘젠(Zen, 禪)’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려줬다. 조지를 통해 ‘선 토론모임’에 참가한 스님은 1992년 5월 헝가리 선불교 수행자들의 초청으로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숭산 스님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숭산 스님과의 만남 일대사인연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난 단지 모를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세상 모든 것이 나와 다르지 않다’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처음 수행이라는 것을 체험해보면서 비로소 자연의 소리, 풍경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죠. ‘와, 이것은 모두 어디에서 오는 걸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숭산 스님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마음의 물꼬가 터진 듯 세상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더 많은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청안 스님은 미국과 폴란드를 오가며 선 수행에 매진했다. 매년 한 차례씩 세 번에 걸친 정진, 그리고 참구…. 스님은 마침내 1994년 8월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수행하던 중 “이것이 바로 내 삶이며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에 굳은 결심을 하고 출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대로 출가 생활을 하기 위해 스님은 한국으로 발길을 옮겨 몇 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한국에서 보낸 후 스님은 스승인 숭산 스님의 뜻을 받들어 고국 헝가리에 한국불교를 전하기 위해 2001년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원대한 꿈을 안고 돌아온 모국에서 펼친 ‘한국불교 알리기’의 첫 진원지는 부다페스트에 마련한 3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던 외롭고 힘든 시간들이 스님을 짓눌렀지만, 많은 이들이 수행에 동참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한국불교에 대한 그의 믿음은 조금씩 주위로 퍼져 나갔고,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배워온 ‘선’은 이내 헝가리인들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2003년, 청안 스님은 더 많은 사람들과 접할 수 있도록 좀 더 크고 환경도 좋은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도 많아졌다. 한국불교에 매료된 사람들은 용맹정진도 불사해가며 수행에 매달렸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선원을 찾아 ‘화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체코의 한 농가를 빌려서 1주일 간격으로 석 달간의 동안거 수행을 진행했을 때는 참가자가 100명을 넘기도 했다. 한국불교의 선 수행이 부다페스트에 자리 잡아 갈 무렵, 스님도 마침내 그동안 구상해오던 원대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선승이 포교를 위해 도심에 기거할 수도 있지만, 철저한 선 수행을 위해서는 산사에 머물러야 합니다. 재가 수행자들은 자신의 수행을 위해 교외의 산사에 머무르며 ‘자아’를 참구하고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지요.”

한국불교의 전통과 특유의 미학을 그대로 헝가리에 재현하겠다는 다짐. 하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헝가리는 한국과 비슷하게 산이 많은 국가다. 군사용 지도를 들고 사찰이 들어설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청안 스님은 산 깊숙한 곳까지 찾아다니며 고군분투했다. 청안 스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숭산 스님은 입적하기 직전 사찰이 들어서기 좋은 풍수지리학의 입지 조건을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 풍수지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해가며 부지를 찾아다닌 것은 물론이다.

풍수지리 따져가며 부지 선별

<사진설명>한국 전통 사찰 예찬론자가 된 청안 스님.

“정말 우연치 않게 산의 단전과 같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원래 생각했던 장소가 아니었는데,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한국의 사찰들이 갖고 있는 입지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곳을 발견한 것이죠. 하지만 그 다음에는 이곳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갖은 묘안을 짜내어도 자금은 부족했다. 결국 스님은 사찰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최근 스님이 쓴 숭산 스님의 법어집 『꽃과 벌』의 계약금과 인세도 모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 건립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전통 목조기술 직접 전수받아

3000여 평의 부지를 선매입한 스님은 온돌바닥부터 기와 한 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방식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2004년 헝가리의 건축기술자 5명과 한국을 찾아 경남 진주에서 한국의 목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원광사의 건립을 각 계에 알리고 진행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홈페이지(www.wonkwangsa.net)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11일, 화계사 회주 설정 스님과 여러 도반 스님, 헝가리의 한국불교 수행자들과 함께 원광사의 상량식을 진행했다.

“몇 년 후가 될 지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원광사가 완공되면 한국의 전통사찰들 못지않을 겁니다. 유럽의 수많은 선원, 사찰들 중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찰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때는 원광사가 유럽의 한국불교 중심사찰이 돼 있을 거예요.”

스님은 내년 5월 6일 헝가리의 불자들과 함께 한국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스님과 같은 벽안의 그들에게 한국 사찰의 전통미와 진정한 한국불교를 보여주고 싶다는 스님의 얼굴에서 푸르른 바다와 같이 깊고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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