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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不二)의 정치

기자명 법보신문

이 기 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겨울이 왔다. 거리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보도 위에 수북이 깔렸던 플라타너스 잎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냇 킹 콜의 아름다운 노래 가을 잎(Autumn Leaves)에서처럼 우리는 곧 모든 겨울 노래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리라.

가난한 서민들에겐 겨울철 지나는 것이 시련이 되리라. 그러나 겨울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집 없는 사람들이리라. IMF 이후에 노숙자들이 많이 생겼다. 꽁꽁 얼어붙은 지하도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면 서글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들에겐 찬 겨울에도 돌아가 언 몸을 녹일 집이 없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은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부동산 문제에 현 대통령만큼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 대통령이 역대에 없었다. 그 의도만은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만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난 것 같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값이 상승했고, 특히 규제의 타깃으로 삼았던 강남지역의 부동산은 폭등했다. 강남, 강북을 가리지 않고 집 없는 서울 시민들이 집을 갖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R. M. 릴케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들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라고 노래했다.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통치하는 방식은 분할하여 통치하는 것 (Divide and Rule)이었다. 즉 통치대상을 분열시켜 서로 반목하도록 하고, 이를 지배하는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가 아니고 통치이다.

즉 권력을 쥔 자가 국민 위에 군림하여 그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치술이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통치란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링컨의 말처럼 다만 국민의 정치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현 정권이 그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을 비롯하여 많은 정책에서 실패한 이유는 바로 분열시켜 통치하는 기법을 정치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크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구분하여, 가진 자를 규제하여 못 가진 자를 돕자는 간단한 철학이다. 이러한 이분법(二分法)이 서양문명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로서 기독교에서는 사람들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구분하여 비기독교인을 은근히 사탄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현대의 여러 가지 비극적 문제들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 안 된다. 불교는 이러한 이분법을 단호히 배격한다. 불교는 불이(不二)를 표방한다.

즉 어떠한 존재나 현상도 다른 현상이나 존재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고 우주의 실상이고 진리이다.

이 불이의 진리를 정치적 측면에 적용해 보자.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지 말고,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을 규제하여 어느 한 쪽 돕자는 발상이 아니라, 둘을 다 같이 돕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하고 그러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권이 선의의 출발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결과로 마감하는 이유는 이러한 불이의 가르침을 정치에 구현할 줄 몰랐던 탓으로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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