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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畵僧들] [13] 의겸 하

기자명 법보신문

임한과 조선 조계산문 양대 산맥 형성

<사진설명>화엄사 대웅전 삼신불(노사나불) 1757년 作.

“조선조 3대가의 한 분인 의겸 불모의 솜씨로써 매우 훌륭한 불화이다. 불화 그리는 이들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불화라 하겠다.”(한국의 불화 12. 202쪽)

‘선암사 감로도’ 걸작

석정 스님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불화’라고 극찬한 그림은 ‘선암사 서부도전 감로탱화’〈사진〉다. 1736년 7월 의겸 스님이 9명의 화원을 이끌고 조성한 이 감로도는 짜임새 있는 구도는 물론 현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명쾌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조를 보여주고 있다. 원색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진홍색과 녹색의 보색대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간간이 사용한 흑백색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밝은 화면을 선사하고 있다.

안귀숙 씨는 논문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 감로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의겸 스님이 이 그림을 그릴 때 ‘운흥사 감로왕도’를 참고했으나 중생들이 현실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러 장면들을 생략하고 있다고 밝힌 부분이 눈에 띈다. 감로탱화의 핵심인 칠여래와 아귀,성반(盛飯)을 부각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만 화면좌우측에 배치했다는 것인데 재의식 장면에서의 돗자리와 장면구획용의 상서로운 구름 등을 생략한 것으로 보아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여느 감로도에서 보이는 아미타 삼존불 대신 아미타불이 빠진 채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사진〉만이 표현돼 있는데 이 역시 의겸 스님의 의도적인 생략으로 보인다. 지장·관음 보살은 화면 우측 상단에 배치돼 있는데 위치상으로는 칠여래 중 일곱 번째 여래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약간의 거리감과 함께 칠여래 보다 조금 작게 그림으로써 칠여래 화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두 보살의 성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현 구도상에서 삼존불이 배치됐을 경우 칠여래와 삼존불의 화면이 서로 살지 못하는 장면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의겸 스님의 화적상 마지막 작품에 해당하는 불화는 ‘화엄사 대웅전 삼신탱’ 중 ‘노사나불’〈사진〉이다. 화기에는 ‘편수’(片手) 앞에 ‘대정경비구의겸’(大正經比丘義謙)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대정경’이라는 직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당시 의겸 스님의 세납은 70세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보면 아마도 ‘총 지휘자’역할을 담당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형적인 의겸화풍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써 당시 화승 들이 의겸의 화풍을 이어가려 했던 흔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정교한 필선…사실 묘사

<사진설명>왼쪽 '선암사 감로탱화' 부분도(지장·관음보살).

그럼에도 채색에 있어서는 배색과 보조색의 결점으로 인해 탁하면서도 어두운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명쾌하면서도 밝은 화면을 보여 준 ‘선암사 서부도전 감로탱화’는 1736년에 조성됐고 이 ‘화엄사 삼신도’는 1757년에 조성됐다. 20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렇듯 상반된 색채의 화면을 보여준다는 것은 적어도 의겸 스님이 건강상의 이유나 혹은 그 어떤 사정에 의해 적어도 채색에 관한 세부적인 측면까지는 간여하지 못 했던 듯싶다. 사실 이러한 색채는 의겸 스님 초기 화풍에 나타나는데 굳이 말년에 초기 화풍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의겸 스님은 이외에도 ‘갑사 대웅전 삼신불도’(석가모니불·사진),‘흥국사 원통전 관음보살도’, ‘해인사 대적광전 영산회상도’, ‘천은사 칠성탱’, ‘운흥사 대웅전 삼불회도’, ‘남원 실상사 지장보살도’ 등의 유수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의겸 스님의 화적을 연구한 안귀숙 씨는 스님의 화풍을 이렇게 평했다.

“조선 초기 이래 축적되어 온 전통적인 불화 양식을 바탕으로 조선 중기 산수화의 절파 화풍을 구사하는 매우 보수적인 자세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화승들보다도 먼저 당시로선 신경향이었을 명대 ‘홍씨선불기종’ 중의 도상을 수용하는 진취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안점감 있는 화면 구성법, 생동적인 정교한 필선에 의한 사실적 묘사, 수묵 담채적 경향, 황토색 바탕에 선홍색과 양녹색의 대비를 이룬 격조 높은 색조화 등으로 특징지어진 그의 청장년기 화풍은 중년에 이르러 진채법과 간결한 화면 구성법에 의한 시각적인 효과를 보이며 더욱 원숙해졌다.”


간결한 화면구성 압권

<사진설명>선암사 서부도전 감로탱화 1736년 作.

의겸 스님의 화풍은 후학들에게 이어져 명실상부한 ‘의겸파’를 형성했다. 따라서 18세기 통도사의 임한파와 더불어 조계산문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의겸파’의 초조 의겸 스님의 불화는 이 시대에 더더욱 가치있는 화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지면개편 상 ‘한국의 화승들’은 잠시 쉽니다.
고산 축연, 완호 낙현 스님 등의 당대 명화승에 대한 연재는 자료가 축적되는 대로 계속 게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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