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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처님 법 아래 우린 1촌입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파라미타-BWC 자매결연 현장

매일 아침 고아원생과
손에 손 잡고 ‘참새 짹짹’
서로 다른 언어 속
미소 하나로 마음 통해

아이들과 함께 그린
벽화 속 세상보며 ‘환희’
떠나는 마음 아린데
초롱한 눈에도 어느새 눈물

<사진설명>캄보디아 씨엠립의 BWC에서 살고 있는 고아 24명과 1촌을 맺은 파라미타 구호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 법을 배웠다.

“고아원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 맑아요. 어쩌면 저렇게 눈빛들이 반짝일 수 있죠?”

12월 17일부터 25일까지 예정된 캄보디아 국제구호활동을 위해 프놈펜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6시간이 넘도록 험준한 교통로를 따라 씨엠립에 도착한 파라미타의 ‘2-H 프로젝트’ 구호단 36명은 BWC(Beautiful World of Cambodia, 원장 성보) 고아원의 아이들을 마주 하곤 감탄사를 쏟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빼꼼히 내다보는 고아원 아이들과 이들을 발견한 구호단 사이에 잠시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 하더니, 조심스레 구호단의 누군가가 손을 들어 흔들자 이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수줍게 손을 흔들며 창문과 문틈 너머 이방인을 지켜보던 조그만 체구의 아이들 입가에서 배시시한 미소가 피어오르며 환영의 인사가 이어졌다. “섶섶바이(안녕하세요).”

극빈층 아이 24명 입소

씨엠립 시내에서 태국 국경 방향으로 승용차로 30여분을 더 달려야 만날 수 있는 BWC는 조계종 실천승가회에서 캄보디아 씨엠립 외곽지역에 세운 종합복지센터. 인재 양성과 교육을 통해 캄보디아에 도움을 주겠다는 성관 스님의 발원에 따라 지어진 이곳에 10월 22일 첫 고아원생 24명이 입소했다. 이들은 아직도 씨엠립을 비롯한 캄보디아 곳곳에 매설된 지뢰와 각종 사고로 부모를 잃었거나, 자녀 양육이 불가능한 극빈층 가정이 양육을 포기한 아이들이다. 때문에 늘 사람의 품이,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운 아이들이지만 내색 한 번 없이 꿋꿋이 BWC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먼 땅에서 찾아온 이방인은 경외심과 두려움이 앞서는 존재일 법도 하건만 자그만 두 눈에는 호의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런 순수한 마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일까. ‘나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며 애써 먼 길을 찾아온 파라미타의 청소년들과 고아원 아이들이 살갗을 부비며 서로를 끌어 안아주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진설명>파라미타는 차가운 콘크리트 담장에 18개의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렸다.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우리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부딪혀야 한다는 사실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떻게 의사를 전달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용재아, 한국외대4)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구성된 파라미타 구호단은 아이들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구호단 1명과 고아원 아이들 1명씩 ‘1촌 맺기’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활동은 모둠별로 진행됐지만,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1촌끼리 행동하기로 했다.

구호단은 자신들이 가져온 옷을 손수 1촌아이들에게 입혀주고, 매일 아침 고아원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을 외치며 등굣길을 함께 했다. 또, 매일 오후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한국에서 가져온 도미노며 줄넘기, 퍼즐, 블록 장난감 같은 것을 바닥에 늘어놓고 함께 놀았다. 파라미타의 청소년들과 고아원 아이들은 함께 하는 이 시간만큼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미소만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학원에 시달리고, 시험에 시달리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너무 없었어요. 이곳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하며 처음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황인성, 운정중2)

자신들이 떠난 뒤에도 고아원 아이들이 자신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구호단은 이제 막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은 BWC의 삭막한 담장에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려주기로 결정했다. 워낙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정이지만 고아원 아이들이 BWC를 비운 오전 한때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남기고자 했다. 밥도 거르고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햇빛을 참아가며 벽화에 열중하다보니 벽 위에 아름다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대과일이 가득 열린 나무와 시원한 계곡이 자리를 잡았고, 그 옆으로 캄보디아에서는 볼 수 없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고아원 아이들과 구호단의 노란 손도장으로만 완성된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올랐고, 먼 옛날 멸종됐던 맘모스가 되살아나 하얀 눈길을 열어줬다. 정성이 가득 담긴 그림들에 BWC의 관계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매일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다보니 처음 출발할 때 길게 느껴졌던 일정은 의외로 짧았다. 이제야 서로의 정을 느끼고 보듬어가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사실을 고아원 아이들도 직감하고 있었다. 차츰 이유 없는 투정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자꾸만 안아달라고 품에 안기고 매달리는 아이도 생겼다.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소녀 슬레이(Hek Sley)는 1촌을 맺은 동규의 품에 안겨 자꾸 눈물방울만 뚝뚝 흘렸다.

<사진설명>언어는 틀려도 순수한 서로의 마음을 알아본 아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별을 두려워만 할 수는 없었다. 헤어짐에 앞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축제를 열었다. 구호단은 모둠별로 실로폰과 멜로디언의 반주에 맞춰 율동을 추며 한국 동요를 불렀고, 고아원 아이들과 나이 어린 보모들은 캄보디아 동요와 압살라 댄스를 선보였다. 구호단의 아이들은 부족한 재료들로도 먹음직스런 간장 떡볶이와 고추장 떡볶이, 상추 겉절이 같은 한국음식을 만들어 냈고, BWC 측은 정성이 가득 담긴 캄보디아식 바비큐와 열대 과일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은 잠시 뒤로 미루고 모닥불을 피운 채 다 함께 노래 부르고 웃으며 불꽃놀이를 즐겼다. 이날만큼은 발전기를 더 돌려 늦은 시간까지 모두가 함께 하고자 했지만, 그 몇 시간이 충분할리 없었다. 밤하늘 은하수 아래 모여앉아 영어 단어를 섞은 짧은 크메르어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전기불이 꺼지고도 한참동안 잠을 잊은 채 얘기꽃을 피웠다.

“아이들 보러 꼭 다시 찾을 것”

아쉬운 밤을 잊을 수 없는 축제로 보낸 다음날. 모두가 한데 모여 작별의 인사를 주고받아야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동안 함께 했던 모두는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이내 교실이 온통 울음바다로 돌변했다. 서로 끌어안고 어르고 달래 봐도 작별의 서러움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떼어가며 버스에 오르는 것조차도 십대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면 전 꼭 다시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올래요.”(김정선, 동구여중1)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아쉬워요.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박주연, 백신고1)

프놈펜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 이국의 풍경이 자꾸만 아쉬워서일까. 구호단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장난기 넘치던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구호단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소중한 추억과 아픈 작별의 시간만큼 부쩍 자라있었기 때문이다.

씨엠립=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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