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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달력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또 그렇게 한 해는 가고 또 이렇게 새해가 왔다.

12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은 바빴다. 못 다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부산했고, 묵은 해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망년회를 했다.

그러나 음력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불교의 달력은 아직도 동짓달 중순이고, 새해가 되려면 한 달도 훨씬 더 남았다. 그리고 아직은 겨울의 한복판이라 봄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양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6년이다. 음력 1895년 11월 17일부터 양력으로는 1896년 1월 1일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이미 110년이나 흘렀다. 지난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은 양력과 음력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의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다.

양력과 나란히 음력을 표기하는 달력은 거의 불교달력 뿐이다. 천년 전통을 지킨다는 점에서는 좋다.

그러나 음력이 크게 표기된 달력을 보면서 구시대적인 달력이란 느낌을 받는 젊은이가 점점 많아진다면, 아니 그 음력달력이 낯설게 느껴지고 불필요한 사람이 늘어난다면 문제는 있다. 양력은 좋고 음력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양력으로는 이미 새해인데, 아직 불교의 새해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년 이상 지켜온 불교의 세시풍속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불교가 전통만을 묵수하고 있다가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선도하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삼국유사에는 도력이 높았던 스님들 이야기가 전한다. 낭지는 구름을 타고 하루 저녁에 중국을 오갈 수 있었다. 양지는 자루를 매단 주장자를 달려 보시물을 거두기도 했다.

원효는 같은 시간에 몸을 백 곳에 나타내기도 했다. 포산의 남쪽 고개에 사는 관기가 북쪽 굴에 사는 도성을 부르고자 하면, 나무가 모두 북쪽을 향해 구부러져 도성이 알고 관기에게 왔다고도 한다. 황당한 설화들이지만 그것은 고대인들의 꿈이었다. 그 황당한 꿈들은 다 이루어져 이제 더 이상 도력이 못된다.

비행기와 핸드폰, 이런 도구가 신라 도인들의 도력을 대신하게 된지 이미 오래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능력을 혁명적으로 확대시켜 주었다. 이제 우리는 눈보다 100만 배나 더 높은 분해 능력을 가진 현미경이 있다.

그리고 우주를 관찰하는 망원경도 있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우리들을 무한히 자유롭게 하고 있다.

이런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 불교가 너무 과학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불교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이다.

연기와 무상을 깨달은 부처님의 사색은 매우 뛰어난 과학자의 사색,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불교는 과학의 종교이고, 불교는 과학의 시대에 과학적인 사유를 멀리할 수 없다.

세상은 변한다. 세상의 인심도 변한다. 그 무상을 강조하는 종교는 불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천년 전통에만 매달려 새롭게 변하지 못하고 안주하고 있다면 미래의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만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파괴는 유신의 어머니라고 강조하면서 과감하고 혁명적인 개혁을 주장한지도 거의 백 년이 가까워 온다. 그리고 지난 1세기 동안의 인류 문화의 변화는 너무나 혁명적이라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또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모습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으로는 따라가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불교는 전통을 고수하는 일만큼이나 변화를 주도하고 스스로의 개혁을 이루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종교라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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