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학의 지혜 후학에 전하는 문화계 ‘아난존자’

기자명 법보신문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김 종 규 이사장

효당-중광 스님 교유
禪茶般若-無碍 배워
30년 삼성출판 운영
‘문화계 마당발’ 별칭

“어차피 태어난 사바세계, 한번 신나게 살다가야 하는거 아니겠나. 경봉 스님이 남기신 말씀이에요. 스님 말씀처럼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인생, 정말 열심히 즐겁게 살다 가야지 않겠어요.”

<사진설명>삼성출판 박물관은 김종규 이사장의 문화의 산실이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대표 풍류가객 김종규 이사장의 2007년 신년 인사는 경봉 스님이 남기신 이야기로 시작됐다. 올해는 김종규 이사장이 8년간의 한국박물관협회장 임기를 마치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는 해이기도 하다. 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본격적인 새 출발을 하고 있는 그는 “이제야 비로소 본분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늘 시간에 쫓겼던 박물관협회장직을 마감했으니 삼성출판박물관장으로서, 또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의 직분에 내실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1999년부터 8년간 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사이 회원 기관이 100여개에서 500여개로 늘었다. 크고 작은 사립박물관 대표들의 모임에서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까지 확대, 한국 박물관들의 공론을 대표하는 협회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게 어디 제 공로겠습니까. 올림픽을 치르고 GNP가 높아지면서 한국인들의 높아진 문화적 욕구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요구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아이콤(ICOM·세계박물관대회)을 치르면서 문화계 인사들 또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이 사실이고. 저는 그 시대 흐름에 맞추어 같이 춤을 춘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더라도 그게 어딥니까. 그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물결에 맞추어 함께 노닐 수 있었다는 게 말이죠. 하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함께 노닐다.’ 김종규 이사장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젊은 시절부터 큰스님들과 교유한 내공 때문인지 김종규 이사장의 말에는 효당 스님으로부터 전수받은 풍류도와 중광 스님의 자유분방한 호탕함이 물씬 배어있다.

“1968년 서예가 오제봉 선생의 서실에 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정말 제게 인연이 닿았던 것인지 효당 최범술 스님을 만났어요. 저는 당시 부산에서 삼성출판사 일을 하고 있었고 서른이 채 안 된 나이였죠. 이후 다솔사를 자주 찾으면서 스님과 인연을 키웠고,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김충렬 고려대 교수, 김상현 동국대 교수, 권오근 전 브리태니커 사장 등과 의기투합해 효당 스님을 모시고 차선회를 만들었어요. 이것이 오늘날 차의 중흥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죠.”

김 이사장이 털어놓는 중광 스님과의 인연은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중광 스님은 서울에서 한 문화계 모임에서 만났죠. 첫 눈에 예사 분이 아니구나 하고 술 한 잔을 청했는데, 그날 스님이 제 차에 오줌을 싸셨어요. 나중에 기사에게 전해 들으니 ‘내가 여기에다 오줌을 갈겼으니 너는 영광인줄 알아라’며 호통을 치더라네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이 차는 벤츠가 아니라 벤소다’라고 했더니, 스님이 그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들으셨나봐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이를 불문하는 막역한 벗이 되었죠. 그 일이 벌써 30여 년 전이네요.”

그의 불연(佛緣)을 듣다보니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들을 소중히 보듬는 것은 앞으로의 복전을 쌓는 길’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른 생각과 다른 취향,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김종규 이사장과 함께 ‘한국문화의 중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매진할 수 있었음은 그가 가진 가늠할 수 없는 ‘그릇’의 힘일 터이다.

김 회장에게는 30여 년 간 삼성출판사에서 닦은 ‘장사꾼’ 특유의 노련함과 불교 문화인으로서 추구해온 반야의 경계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러한 그만의 양면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삼성출판박물관이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고서를 수집하는 게 참 좋았어요. 저희 형님(김봉규 삼성출판사 명예회장)은 새 책 팔아서 헌 책 산다고 못마땅해 하시곤 했죠. 제가 장사꾼이면서 돈이 안 되는 고서수집에 열중했던 이유는 그게 우리 문화의 깊은 뿌리가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불자다 보니 자연히 불교전적에 관심이 가게 되어서 그런지, 우연의 일치인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된 10여권의 국보·보물급 책들이 모두 불교서적이에요.”

그렇게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 현재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13권, ‘월인석보’ 22.23권 등이다. 김 이사장은 ‘불교인들이 노련한 장사꾼이 되어야 불교가 발전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한국에서 불교만큼 좋은 문화적 토대와 교리를 가진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기독교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칠 때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불교에는 유정무정(有情無情)이라는 개념이 있죠.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은 물론, 나무나 심지어 바위 같은 무생물까지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남산 위에 우뚝 선 소나무, 나무를 받쳐주는 바위, 바위 위에 기생하는 이끼가 모두 유정무정에 포함되는 거죠.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웬만한 병은 풍광 좋은 절에서 사찰음식을 먹으며 수행을 하다보면 대부분 치유가 되는 것들입니다. 수행과 교리, 의식주가 모두 하나로 일치될 때 불교문화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불자들도 늘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설명>불교와 문화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김종규 이사장.

김 회장은 수년전부터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 뮤지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일명 김종규 살롱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쟁쟁한 문화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젊은 초학자들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이는 물론 김 회장의 나이를 뛰어넘는 친화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젊은이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들이 각자의 필드에서 우리문화를 직접 써먹는 일은 또 다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죠. 나는 ‘마당발’로 칭해질 만큼 사람들을 많이 아니까 내가 아는 훌륭한 지식인들을 후학들에게 소개해주고, 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게 바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하화중생이 아니겠어요.”

효당 스님이 내리는 차를 마시면서 선다반야(禪茶般若)와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배웠고, 중광 스님을 통해 걸림 없는 무애(無涯)를 배웠던 열혈청년은 이제 이순(耳順)을 넘기고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30여년이라는 나이차를 넘기고 법우로 받아준 그 스승들에 대한 고마움은 이제 30년 어린 젊은이들을 허물없는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이어졌다.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소신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또 하나의 문화혁명을 구상하고 있는 그는 그런 친구들이 늘어날수록 한국문화의 힘 또한 함께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