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수천년 전통의 불교계는 있는데, 왜 변변한 불교서적은 없느냐.”
외국인 학자들이 토로하는 한국 불교계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한국불교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 즉 영문서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중국과 일본불교의 경우 기초경전들은 물론 이를 연구한 전문서적들까지 영문판으로 구비돼있는데 비해 한국불교는 원효 스님 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저술들이 서구에 거의 소개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러한 실정은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마저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구미와 유럽에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의 카피본으로 인식돼고 있는 것 또한 중국과 구별되는 한국 승려들의 저서가 거의 소개돼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계종이 종단 차원으로 한국이 낳은 위대한 고승들의 사상서들을 영어로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계종은 1월 9일 기자브리핑을 통해 앞으로 3년간 의상·보조 스님 등 한국전통사상서를 영어로 번역·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번역되는 책은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비롯해 보조국사의 『보조법어와 『간화결의론』, 진각국사의 『선문염송』과 『진가국사어록』, 태고국사의 『태고화상어록』, 나옹왕사의 『나옹어록』, 백운선사의 『백운어록』,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청허당집』, 『선문촬요』, 함허 스님의 『금강경오가해설의』, 인오 스님의 『청매집』, 연담스님의 『임하록』, 의첨스님의 『인악집』, 성총 스님의 『치문경훈주』, 경허 선사의 『경허집』, 만공선사의 『만공집』, 용선선사의 『각해일륜』,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지관 스님의 『한국불교 소의경전 연구』, 조계종출판부의 『간화선』, 『한국불교사』 등 18명 스님의 저술 23권이다.
이번 사업에는 총 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이 사업을 진행할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가 설치될 계획이다. 총무원장 직속기관으로 운영될 간행위원회는 간행위원과 자문위원회, 집행위원장 및 상임연구원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번역되는 책들은 전세계 주요대학 100여 곳과 대사관과 한국문화원 등 재외공간, 교민단체 등에 배포될 계획이다.
조계종은 “이번 사업으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해외학자들의 늘어나고, 세계속에 한국불교의 정신사상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한글본이 존재하는 것부터 우선 번역될 예정이며, 한글과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해 각계의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한편 조계종은 한국전통사상서 번역출판 사업을 담당할 상임연구원을 공개모집하고 있다. 마감은 1월 20일이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