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년퇴직 후 인생 2막, ‘보살’로 거듭나다

기자명 법보신문

캄보디아 BWC에서 봉사로 새 삶 여는
정해년 동갑내기 김용연-송계영 부부

안락한 노후 대신 ‘고아들의 희망’ 발원
생물자원연구 30년, 선진농법 전수 회향

<사진설명>12월 31일 KT&G 중앙연구원 생물자원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정년퇴직한 남편 김용연 거사와 평생 김 거사를 뒷바라지 해 온 송계영 보살은 보살행 실천을 위해 안락한 노후를 포기하고 1월 15일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지난 60년이 ‘불법’이라는 싹을 틔워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고, 가꿔온 세월이라면 앞으로의 기간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회향의 시간입니다. 지금껏 보고, 듣고, 배운 부처님 법을 실천으로 옮기려 합니다.”

1월 15일 김용연(61ㆍ혜림), 송계영(61ㆍ혜림화) 부부는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생 2막의 시작이다. 정해(丁亥)생 동갑내기 부부는 ‘불법을 실천하며 함께 인생의 회향을 맞이하자’는 큰 서원을 가슴에 안고 앙코르와트의 고장 캄보디아 씨엠립을 향해 날아갔다.

KT&G 중앙연구원 생물자원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정년퇴직한 남편 김용연 거사와 평생 김 거사를 뒷바라지 해 온 송계영 보살.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아왔기에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즐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안락한 삶 보다는 보살의 길을 택했다. 이들 부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4월의 일이다. 당시 김 거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의 일만 같던 정년이 목전에 다가왔고, 정년퇴직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정년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순식간에 늙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농학박사인 김 거사는 KT&G 중앙연구원 생물자원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생물자원 분야에서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7년 1월 1일자로 가야할 직장도, 해야 할 연구도 한 순간 사라지리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공허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동안 모래탑을 쌓아온 심정이랄까.

부지런히 일한 덕에 남은 여생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자산은 마련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갈 길을 잃고 사거리 한복판에 놓인 아이처럼 정년이란 현실은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잠시 노인들을 위해 봉사할 생각도 했었다. 2003년 수원포교당 거사림회 회장으로 추대된 후 덤으로 맡게 된 사회복지법인 선재원 이사 소임을 수행하면서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한 생을 마감하는 회향의 방법으로 최상의 가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없었고, 연구실을 떠난 나를 생각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안했다. 이때 은사처럼 모시던 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의 한 마디가 김 거사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캄보디아 씨엠립에 고아원을 비롯한 종합교육복지시설 ‘BWC(Beaut iful World of Cambodia)’를 운영 중입니다. 거사님 같은 분이 은퇴 후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농업분야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농작물, 농사법, 농기구 등을 개발·보급한다면 지역의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텐데요.”

머리에 갑자기 전기불이 환하게 켜지는 느낌이었다. 화두를 깨친 스님들의 느낌이 이러했을까. 성관 스님의 제안은 보살의 삶을 살면서 생물자원 분야를 연구한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목젖을 타고 올랐다. 그러나 그냥 꾹 눌렀다.

평생의 지기로 이제 어느덧 함께 회갑을 맞은 아내 송계영 보살과 상의 없이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 종일 화두를 짊어진 수행자처럼 끙끙 앓던 김 거사는 조심스럽게 스님의 제안을 아내에게 풀어놓았다. 찰라가 억겁이었다. 그러나 이내 돌아온 대답은 ‘좋다’는 응답. 김 거사는 귀를 의심했다. 혹시 캄보디아의 현실을 몰라서 그러나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생활은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와는 거리가 먼 힘들고 고생스런 나날일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자 아내는 “그런 좋은 길을 혼자서 갈려고 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사실 퇴직을 앞두고 번민에 휩싸인 남편을 모르는 체 지켜봐야했던 아내 송 보살의 마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송 보살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남편의 얼굴에서 희망과 기쁨을 엿볼 수 있었고, 자신 또한 꿈꾸던 이상적인 노후였다.

마음을 정하자 다시 다른 고민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4명의 딸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했다. 편안하고 색다른 노후를 위해 해외 휴양지로 간다고 해도 쌍수를 들고 반대할 판에 환갑의 나이에 고생을 자처하며 오지로 향한다면 자신들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딸들이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김용연 송계영 부부는 일단 일을 어느 정도 진행한 후 가족들에게 통보하기로 했다.

송 보살이 먼저 부업으로 운영하던 조그만 가게를 정리했다. 살던 집을 처분했다. 잠시나마 고민도 했지만 돌아갈 곳이 없어야 캄보디아에서 더욱 빨리,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퇴전이여야 진일보인 셈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다. 성관 스님께 물어봐도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가보면 자연스레 해야 할 일들이 보일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성지순례를 핑계 삼아 9월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앞으로 살아야 할 곳이란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졌다. 그러나 이내 숨이 턱턱 막혀오는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들 노부부를 괴롭혔다. 축구장 5개를 합쳐놓은 규모의 BWC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절로 입이 벌어졌다. 물론 감탄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수 십 명의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관리해야 할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일일이 지역 농가를 방문해 주민들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고는 더욱 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런 가난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BWC 법당에서 저녁예불을 모시던 김용연 송계영 부부는 한참을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평생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다. 굶주린 나머지 벌건 흙탕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부부는 한참을 엎드려 울었다.

“이렇게 훌륭한 불사와 인연을 맺어준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미약하지만 지금껏 부처님께 받은 공덕의 만분의 일이라도 회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기술 그리고 작은 재주라도 고통 받는 아기부처들을 위해 모두 쏟아 붓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김용연 송계영 부부는 바빠졌다. 김 거사는 인터넷과 외국학술지 등을 조사하며 씨엠립 인근에 적합하고, 농가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농작물과 농사법 연구에 들어갔다. 송 보살은 아이들의 머리 손질이라도 직접 해야겠다며 이·미용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부부는 가족들을 불러 은퇴 이후 계획을 밝혔다. 예상대로 딸들의 만류는 극심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안타까운 눈물도 이들 부부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출국일자도 1월 15일로 정했다. 가까운 친지들에게 인사정도만 전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결정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 적응해 BWC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1차 목표는 BWC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2차는 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현지에 맞는 농법을 개발해 보급함으로써 새마을운동에 버금가는 농가개혁운동을 전개하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캄보디아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겠지요.”
김 거사는 캄보디아에서 BWC 원장 성보 스님을 보좌하며 시설의 전반적인 운영을 총괄하게 된다. 송 보살은 남편의 곁에서 아이들의 식사와 위생, 현지 보모들의 관리 소임을 맡는다.

“40여년을 농부로 살아왔습니다. 씨를 뿌려 잘 자라도록 가꿔왔다면 꽃을 보고 열매를 따야지요.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꽃과 열매를 포기하는 겁니다.”

김용연 송계영 부부의 두 눈에는 이미 해맑은 얼굴로 뛰노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수확의 기쁨에 웃음 짓는 농부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