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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수행 명계환 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재수생 시절 얼굴에 진물 흐르는 병 생겨
병원 전전하다 호남 시골의 절에 들어가

지장보살님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 20여 년 전 희열로 가슴 벅찼던 발심의 순간들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당시 나는 대학 재수생이었다. 고교시절 학업은 뒷전으로 한 채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것에만 몰두했던 속칭 ‘날나리’라는 부류에 속했던 나에게 재수는 필연이었다. 또 모난 성격 덕분인지 일상적인 말에도 자존심이 상해 혼자 마음의 난행과 함께, 먼저 시비를 걸어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았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폭언은 물론, 쉽게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사는 철없는 젊은이였다.

재수를 위한 준비는 타의에 의해 이끌려 간 스파르타 형식의 모 학원이었다. 결국 병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 곳이다. 건물 내에서의 출입통제, 한 달에 2일 정도의 외출, 탁한 공기로 가득 찬 잠자리 등 낯설었던 상황은 나에겐 견디기 힘든 심리적 압박감이었다. 결국 억지로 참던 화로 인해 내 몸에는 좋지 않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붓고 눈은 충혈 됐다. 다음날은 눈썹이 빠지고 얼굴에는 진물이 묻어 흐르면서 날이 갈수록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됐다. ‘이러다가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일단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와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헌데 가는 병원마다 의외로 의사 선생님들의 처방이 시원치 않았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병이니 쉬라는 것이다. 또 한의원에 가 봐도 일종의 풍이라고 하며 얼굴에 잔뜩 침만 꽂는다. 증세에 대한 원인을 시원하게 얘기해 주고 처방해 주는 사람도 없고, 백방으로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었다.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한 달을 보내면서 학업은 물론 삶에 대한 의지까지 잃었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이 절에 가는 것이었다.

절에 가면 병이 나을 것 같은 은근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사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현실도피성 결정이었다. 속만 태우시는 어머니는 “그럼 그렇게라도 해보자”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꺼지는 한숨만 쉬셨다. 지인의 도움으로 가게 된 곳이 전라남도 승주군 이읍상리에 위치하고 있는 천자암이다. 거기에 가면 대단히 큰스님이 계신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천자암은 송광사 말사로서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기이하고도 신비하게 자란 쌍향수(雙香樹)로 유명한 암자다. 또한 천자암에서 내려다보는 운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천상에 온 느낌마저 주는 곳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내게 당시 산사의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대중이라고 해 봐야 큰스님, 공양주 보살님, 스님 한 분, 그리고 말썽 때문에 부모가 맡겨 논 선재라는 어린동자가 전부였다. 깊고 험한 산골에 위치한 이곳에서 얼굴을 차갑게 채찍질 하고 지나가는 바람은 야속하기까지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절의 이미지는 그저 한가롭고 조용한 이미지, 그리고 여유롭게 쉬면서 듣는 스님들의 덕담, 너털웃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보통 새벽 2시에 일어나 도량석과 새벽예불은 봉행해야 했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끊임없는 운력에도 예외가 없었다. 처음 이런 상황은 오히려 더 괴롭고 짜증스러웠다. 몸은 몸대로 아프지, 워낙 외지고 험한 골짜기의 기운에 압도당해서인지 밤에는 두려움과 온갖 잡생각으로 오히려 정신이 사나워졌다.

불교환경연대 팀장(39·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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