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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해

기자명 법보신문

이 기 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가 지나갔다. 북핵문제, 부동산폭등, FTA, 비정규직문제, 어는 것 하나 시원스레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해가 그냥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다. 어디로 간 줄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기적의 새해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고통스런 문제들이 사라질 새해를.

금년은 60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의 해, 길운의 해라고 한다. 모두 부자가 되는 해라고 한다. 믿어도 될까? 금년이 과연 기적의 해가 되리라고.

오래 전에 유리 겔러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TV에 출연하여 염력(念力)으로 쇠 스푼을 구부린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도 그를 따라서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사람들은 초능력 또는 심지어 기적이라고 했다. 누군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한다. 어떤 사람이 물위로 걸어갔는데 기적이 아닙니까? 부처님이 아니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이와 비슷한 모든 초능력 현상들은 기적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것들은 모두 일종의 유희 같은 것으로 기적도 아니고 추구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럼 기적이 무엇인가하고 묻자 부처님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사람이 더 지혜로워 지고 더 자비로워 지는 것 이것이 기적이고,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참으로 부처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중고등학교 모임에 나가면 오랫동안 못 보았던 옛 친구들을 보게 된다. 나이는 지긋이 들었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두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고 놀라게 된다. 참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열반하신 송광사의 방장 일각선사는 심경의 “색불이공”을 “색(현상)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풀이하셨다. 즉 우리가 처한 상황, 환경은 모두 우리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들, 상황들은 모두 우리의 거칠고 지저분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는 말씀이다. 일각스님은 지저분한 생각이라는 표현을 즐기셨다. 그러면 모든 고통과 미망이 걷힌 기적의 새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어야 한다. 지저분한 마음이 청정한 마음으로 변해야 한다.

원로 정객 이철승씨는 종교는 상수도 공사이고, 정치는 하수도 공사라고 말했다 한다. 청정한 상수도 물도 혼탁한 시정(市井)을 흘러가면 악취 나는 탁수(濁水)로 변하고 만다. 하물며 상수도의 물이 탁수이면 그 하수도 물은 어떠하겠는가? 여기에 소위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들의 진지한 각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다. 최소한 상수도 물이라도 맑아야 하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의 쏘네트(Sonnet)를 읽어보자.

세월이여, 네가 변한다고 뽐내지 말라,
새 힘으로 세워졌다는 너의 거대한 건축물들도
내게는 놀라울 것도 신기한 것도 없노라.
옛날 본 것에 새 옷을 입힌 것뿐이라.

분명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해가 될 것이다.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또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해 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600년 만에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도 “새 힘으로 세워질 거대한 건축물들도 놀라울 것도 신기한 것도 없이 한갓 옛날 본 것에 새 옷을 입힌 것 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슬프게도 힘들었던 한 해를 되돌아보며 기적의 새해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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