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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공소사 주지 청 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돌림법회-수행원 개원으로 청정 수행 길 제시

“어떤 수행이든 스스로를 하심(下心)하게 하고, 분별심을 없앤다면 그보다 더 나은 수행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밥이든 국수든 중요치 않아요. 실제로 먹어 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참으로 수행하는 이들은 말이 없다.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낸 나무들이 봄날 기쁨의 꽃망울을 터트리듯 가치있는 일들은 항상 이렇다. 말없는 실천이다.

공소사 주지 청아 스님. 포교를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 높여 수행을 논하지도 않지만 참된 불법의 세계를 염원하는 불자들에게 밝은 빛과 같은 존재다. 절 살림 일체를 신도들의 손에 맡기는 파격은 물론 재가자의 수행결사도량인 아미수행원의 개원을 통해 불자들의 어깨에서 기복을 내려놓는 대신 청정한 수행의 길을 제시하는 한겨울 동치미 같은 스승이 바로 청아 스님이다. 특히 대중 모두가 차례로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 ‘돌림법회’는 스님의 트레이드 마크. 탄허 스님의 전통을 이은 것뿐이라 겸손해 하지만 보석도 보는 눈에 있어야 눈에 띄는 것 아니겠는가.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문득 파란 하늘을 쳐다보거나 혹은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일상의 모든 것이 퇴색되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언제가 한번쯤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의문들이 불쑥 찾아 듭니다. 나는 누구인가.”
 - 본지 2006년 2월 1일

한편의 시 같았던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서울 대치동의 아미수행원을 찾았다.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계단을 오르자 환한 미소로 일행을 맞는 회원들. 비움으로 충만했을 스님의 마음이 읽혔다.

“아미수행원은 재가자 결사도량입니다. 사찰이나 포교당의 개념과 달리 회원제로 운영된다는 점이 독특하지요. 예를 들면 레스토랑의 멤버쉽 같은 것인데, 회원이 되면 평생의 도반이 되는 까닭에 1년간의 과정을 끝낸 후 모든 회원의 동의가 있어야만 회원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한지로 깔끔하게 장식된 방 한켠에서 정갈한 다상(茶床)을 앞에 둔 스님의 눈빛은 맑다 못해 빛이 났다.

아미수행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한참을 벗어나 버린 한국불교를 새롭게 하기 위한 스님의 고뇌에 찬 결과물이다. 성직자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던 가톨릭(구교)의 억압된 신앙을 타개하기 위해 개신교(신교)가 일어났듯이 기복과 대형불사에 찌든 한국불교를 혁신코자 아미수행원은 탄생됐다. 청아 스님은 아미수행원을 통해 스님들의 그림자만 쫓던 재가자들을 수행의 자리로 온전히 되돌려놓았으며, 스님과 재가자의 역할을 새롭게 정리했다. 수행원의 운영은 재가자들의 자율에 맡기고 스님은 수행의 큰 줄기만을 제시할 뿐이다. 수행 외엔 어떤 간섭도 요구도 하지 않는다. 수행만이 모든 것을 말할 뿐이다.

“초심자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입문하게 되면 금강경, 천수경, 반야심경, 자경문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법을 특별히 강요하지는 않아요. 평소에 하던 수행을 그대로 하면 됩니다. 어떤 수행이든 스스로를 하심(下心)하게 하고, 분별심을 없앤다면 그보다 더 나은 수행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수행이 옳다, 그르다는 수행의 상이 생기면 오히려 치료 불능입니다. 밥이든 국수든 중요치 않아요. 실제로 먹어 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스님은 간화선만을 딱히 고집하지는 않는다. 서울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가느냐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제 수행은 하지 않고 수행법을 논쟁거리로 싸움을 벌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스님의 전매특허가 돼 버린 돌림법회는 그래서 탄생됐다. 돌림법회는 동안거가 끝날 때부터 하안거가 시작 될 때까지 모든 대중이 차례로 법석에 올라 법문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법거량인 셈이다.

“돌림법회를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탄허 노스님께서 월정사 수행원을 개원해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결사를 했는데, 결사에 참여한 비구, 비구니, 청신자, 청신녀 모두가 차별없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돌림법회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윤좌법회라고 했는데 돌림법회는 윤좌법회를 한글로 풀어 쓴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월정사에서도 사라져 버렸어요. 서글픈 일이지요.”

남을 평가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이 평가 대상이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돌림법회는 노트나 메모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 대중들 앞에서 수행의 밑바닥을 보여야 하는 일종의 진검승부다. 청중들의 질문을 받아내야 하고, 법문 내용은 고스란히 녹음이 돼 자신에게 전달된다.

“처음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자기를 빼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찰로 가겠다는 이들도 많았어요. 대전 자광사의 신도 절반이 돌림법회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절로 갔으니, 말 다했지요.”

그러나 돌림법회가 정착 되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신도들 간에 존경심이 생기고 신뢰가 쌓였다. 재력이 있고 말주변 좋은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고 수행력 깊은 보살다운 이들이 주목을 받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법문은 대중의 불성을 울리는 법. 이들의 법문은 수행이었고, 그대로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법문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녹음된 자신의 법문을 들으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이것이 끊없는 하심(下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아미수행원의 모습은 여러모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불교와 유사성이 깊다. 재가자 중심의 회원제 운영, 기복을 배제한 수행 중심의 프로그램. 영락없는 쌍둥이다. 서구처럼 종교성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도량 운영은 많은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제가 공부한 과정이 조금은 독특해요. 1995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특이하다면 특이하지요. 사람마다 불교와 인연이 조금씩 다른데 저는 물리학을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었어요. 물리를 연구하다보면 기존의 생각이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물질과 정신, 물질과 공간, 부분과 전체에 대한 문제들인데, 서구의 철학과 종교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요. 실험실에서는 분명히 보이는데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지요. 그런데 불교에는 모든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에서 답을 얻었어요. 일부분이 아니고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버리니, 서양학자들도 불교를 알고 나면 확 가버리지요.”

물리학에 몰두할 당시, 스님의 머리에는 과학과 불교가 양쪽에서 돌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소통을 못하니 그야말로 화두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머릿속이 ‘번쩍’ 하는 것 같더니 과학과 불교가 굴비를 꿰듯 하나로 상통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불이사상으로 과학뿐 아니라 숙세의 인연과 삶까지 빗자루로 마당을 청소하듯 한꺼번에 쓸어 담아버린 것이다.

“스님들이 사찰을 모두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스님들의 숫자까지 줄고 있지 않습니까. 역할 조정이 필요해요. 저는 그 대안을 기독교에서 찾았어요. 구교인 가톨릭은 성직자의 권위가 너무 강해 신자들의 역할이 없고, 대신 신교인 개신교는 성직자는 없고 신자만 있어요. 이 틈새에 불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이런 두가지 모습들을 절충한 것이 아미수행원입니다. 중도라면 중도지요. 시스템을 만들고 나니 서구의 도량 운영과 유사한 모습이 되더군요.”

스님은 현재 수원 공소사와 대전 자광사 주지를 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찰도 아미수행원과 마찬가지로 사찰 운영은 재가자들의 몫이다. 스님은 있으나 관여하지 않고, 방향만 제시할 뿐이다. 현재 아미수행원은 일산과 서울 두 곳이다. 스님은 올해 과천에 또 다른 아미수행원을 준비 중에 있다. 그러나 스님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맥도날드가 전세계에 10만여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으니, 아미수행원도 그 정도의 수행원을 개원해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맑혀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이 또한 재가자들의 수행이 곰삭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터.

“목숨을 건 발원이 있어야 합니다. 확고한 목표를 정한 수험생이 좋은 대학에 가듯 발원은 자신의 수행 목표를 명확히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는 든든한 도반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등 뒤로 회원들의 발원문이 사진과 함께 차례로 걸려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더 이상의 고통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에 걸려든 발원문의 내용이 이렇게 비장하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청아 스님은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1993년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대전 자광사 및 수원 공소사 주지로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물리학 박사 학위 논문으로「초기 우주에 붕괴되는 입자들의 우주론적 제약들」이 있으며 동국대 불교대 박사 논문으로 「불교와 현대물리학의 세계관 비교연구」를 제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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