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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자화상은

기자명 법보신문

최 명 숙
시인

영화 마니아는 아니지만 영화를 심심치 않을 정도로 보는 편이다.

연초라 다른 때보다 부산하게 일주일을 보낸 금요일 저녁에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았다.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혼자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인데, ‘오래된 정원’이 영화는 혼자 보아야 좋을 것 같았던 예감이 적중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1980년대 광주민주항쟁에 연루되어 17여 년간 수감생활을 마친 뒤 출소하는 오현우와 그의 수배기간 중 짧은 사랑을 나누었던 미술교사 한윤희와의 1980년대 이후 삶을 다룬 영화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원작으로 했으나 소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1980년대를 조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1980년대에 대한 오현우의 성찰과 한윤희를 빌어 동구권 몰락 뒤 달라진 세상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오현우와 한윤희 간의 멜로에 초점을 맞추고 긴 기다림 속에 고통의 시간을 보낸 한윤희의 시선을 통해 1980년대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영화는 우리들의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인 사랑의 감정조차 사치스럽게 여겼던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모습에 대해 ‘그것 역시 억압의 다른 한 방편이지 않았나?’ 하고 묻고 있다.

영화에서 모든 상처의 치유와 회복은 결국 개인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 것은 소설에서도 같은 맥으로 짚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희미해져서 단언할 수는 없으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열려있던 입체적인 인물이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주인공 한윤희는 참으로 맘에 드는 캐릭터로 영화를 참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미술교사 한윤희는 자유로운 영혼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여자다. 그러면서도 강하고 변함없는 여자다. 정말 이 시대의 괜찮은 인간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말라버린 인간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들국화가 불렀던 사노라면의 가사 한 구절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 그것 밖에 없는 오현우, 1980년 광주 항쟁의 현장에 있었으며 사회주의자임을 스스로 외쳐대던 그 남자를 숨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던 여자. 감옥에 들어가 아무것도 기약할 수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의 아이를 아무런 계산도 없이 낳은 여자 , 법률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 그를 은닉시켜준 사람이라는 이유로 면회도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를 기다려온 여자.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암으로 죽고 마는 여자가 한윤희다.
정말 어딘가 그런 여자가 존재하리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쓸쓸한 냉기가 가슴을 파고들게 한다.

그 때 그 시절엔 어쩌면 누구라도 그리워할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변치 않고 기다리는 믿음, 그때도 지금도 존재하지 않을 그 믿음의 가치를 우리는 모두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1980년대, 그 시절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젊은이들이 지금 이 사회의 한 부분을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돈이 돈을 모으고 가난이 가난을 되풀이하게 하고 있다.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면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날마다 출근을 하고 때로는 글을 쓰면서 나 역시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면서 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사회의 변화에 낙심하고, 변변치 않은 우리들의 아픈 사랑에 절망하면서 살아왔다. 그게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시대에 낯설지 않은 화가 ‘조덕현’의 낯익은 그림을 배경으로 흐르는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들으면서 관객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그대로 객석에 앉아있었다.

‘오래된 정원’으로 돌아가 그 시절 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 겨울,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시대 우리들이 오래된 정원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남아있을까”라는 스스로 자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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