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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공사’ 창립을 기다리며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불교가 크게 융성하고 발전했던 고려시대, 만개한 불교문화에 모두가 취해 있을 때, 오직 무기(無寄)스님만은 당시의 불교계를 향해 “위태롭고 위태롭다”고 외치면서, “급하고 급하다”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승복을 입은 자 많지만, 하우(下愚)들 중에는 부끄러운 짓 하는 이가 많구나. 혹 어떤 비구는 글자도 모르고, 구구하게 구걸하되 오직 많이 얻을 것만을 생각한다. 또 어떤 비구는 조잡한 지식으로 단지 한 두 경만 얻어 문자만 읽을 뿐, 그 의취에는 감감하고, 석존의 행적도 모르면서 스스로 법사라 하여 부정한 설법으로 뭇 사람들을 현혹케 한다. 혹은 비구가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혹은 왕공대신의 세력에 붙어 스스로 부강을 얻어 빈약한 백성을 능멸하고 음행과 술을 즐기고, 혹은 외서를 찬양하고, 속인과 더불어 사귀면서 창으로 화답하고, 혹은 잡된 유희와 바둑, 도박, 거문고, 피리 등을 즐기니 좋지 못한 행위가 이와 같이 심하다. 농부의 비방을 면키 어렵고, 선비들의 비방을 받게 되었으니, 정법을 위태롭게 하는 모습은 차마 보기 어렵다. 위태롭고 위태롭다.”

1328년에 석가여래행적송의 집필을 끝내면서 무기는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소승 비록 불민하나 앞날이 두려워 이와 같이 광언(狂言)을 발하노니, 청컨대 모든 어진 이는 미친 사람의 말이라 하지 말고 밝은 거울로 삼아 각각 그 뜻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기스님의 이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거의 없었고, 머지않아 불어 닥칠 억불이라는 태풍을 짐작도 못했다.”

물론 이보다 앞서서 고려 불교계는 기존 불교에 대한 반성으로 신앙결사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지눌은 명종 20년(1190)에 거조사에서 정혜사(定慧社)를 결성해서 명리(名利)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세속에 물들지 말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를 기약했다. 요세는 개경 고봉사 법회에 참석했다가 크게 실망, 훗날 백련사 창건를 창건하고 백련결사문 반포했다. 조계종 지눌의 수선결사와 천태종 요세의 백련결사는 모두 기존 불교계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하여 불교계의 여러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하기도 했다. 요세의 겨우, 삼의일발(三衣一鉢)로 생활하면서 세상의 일은 말하지도 않았고, 개경 땅은 다시 밟지 않았으며, 방석 없이 좌정하고, 등불도 밝히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수행했다. 시주의 보시는 빈궁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물이 고이면 상하듯이 고려후기의 결사운동도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변질되었고, 원나라 간섭시기의 고려불교계는 또 다시 많은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었다. 14세기 충숙왕대에 주로 활동하며 요세의 실천수행을 계승했던 무기스님은 석가여래행적송을 지어서 당시 불교계의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했던 것이다.

신년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젊은 스님들이 모여서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공사’를 3월에 창립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승가의 내부적인 문제를 밖에서 지적하기는 어렵다. 설사 지적한다고 하드라도 그것은 비판에 거칠 뿐, 실제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란 어렵다. 승가의 여러 문제를 성찰하고 비판하며 동시에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젊은 승려들로부터 움트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불교가 크게 융성하고 있던 시대에도 자기를 비판하고 반성하려 했던 점을 새기면서 21세기의 불교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가야할지 많은 모색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중공사’ 창립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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