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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기도, 아닌 것도 같은’ 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남궁 영
동아방송대 교수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에 ‘같기도’라는 것이 있다. 출연자의 말을 빌리자면 ‘같기도’란 춤의 절대무공을 지향하는 바,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같기도’라고 한다. 출연자들은 이소룡 풍의 체육복과 도복을 입고 나와 합기도 아니면 태권도와 같은 무슨 무술을 보여줄 것처럼 ‘같기도’를 외치지만, 막상 코너가 시작되면 딴 판이다.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김준호는 허연 눈자위를 드러내고 마치 신들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녀,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녀’란 말을 되풀이하며 무대를 휘젓는다. 이를 보는 객석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안방의 시청자들도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와 우스꽝스런 몸짓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코미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시청자들은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면서도 씁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코미디가 현대 한국 사회를 고도로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같기도’란 말은 ‘비슷하기도 하다’란 말로 우리는 일상적으로 ‘같기도 하고’라는 말 뒤에 ‘아닌 것 같기도 하다’라는 말을 붙여 쓰고 있다. 즉, ‘같기도’란 말은 항상 부정의 의미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뭔가 긴 거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아닌 것 같으면서도 긴 거 같은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 판단이 유보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 또는 기던 아니던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그런 상태를 일컫는데 적당한 말이다. 또한, 현대사회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그 특징 중 하나가 ‘경계의 벽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구분의 벽이 허물어지다보니 매사가 모호해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현상이 만연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상태이다. 국민들은 이런 ‘같기도’에 혼미해지고 있으며 판단력을 잃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노대통령이 지난달 군부대를 방문해서 ‘군대가서 몇 년씩 썩는다는 발언을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라고 하였다 한다. 노대통령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락없는 ‘같기도’의 도반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판결한 판사들의 실명 공개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안된다고 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는 괜찮다고 한다. 박근혜 씨는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 여기고, 어떤 사람은 침묵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거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녀’이다. 취임 4주년을 맞는 노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빼고는 꿀릴게 없다고 큰소리 치고, 몇몇 신문은 고통의 세월이었다고 한다. ‘잘한 것도 아니고, 잘못 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집 사지 말라고 하고, 시장에서는 집값이 잡히겠느냐고 한다. ‘집값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시민들만 골치 아프다. 그러니 ‘같기도’를 보면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명박 씨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어, 차기 대선에서 당선될 것 같기도 하고, 과거 예를 보자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해서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모르는 군상들은 ‘줄을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게’ 입장을 보인다. 열린우리당 탈당 행렬을 보면서, 신당행을 굳힌 사람들과 당 사수파의 대립, 거기에 노대통령의 가세까지 합쳐지면, 열린우리당은 깨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여당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열린우리당이 없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대통령 말대로 지역당을 초월한 정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몇몇 국회의원들이 탈당을 하던, 신당을 만들던, 잔류를 하던 국민들은 관심 없는데, TV에서는 연일 이들의 행보를 탑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차라리 김준호처럼 개그 프로에 나와서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녀’라는 말을 되 내이며 오리걸음을 걷는다면 국민들이 웃기나 하지. 국민들이 삶에 지치고 힘들어 화투를 치는 손 모습에 정치인들은 마치 박수를 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박성호 말대로 ‘이거는 박수를 치는 것도 아니고, 화투를 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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