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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전설은 중대 왕실 몰락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2.12 09:15
  • 댓글 0

성낙주 씨, ‘에밀레종 정치적~’서 주장
“혜공왕 어머니 원망한 신라인들 목소리”

‘에밀레~ 에밀레~’ 종을 칠 때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전설의 주인공은 근대 이후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다.

하지만 에밀레종 설화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중세의 사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근대 이후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불교의 인신공양(人身供養) 내지 고대인들의 사신공희(捨身供犧) 풍습, 즉 사람을 바쳐 제물로 삼는 형태의 이야기가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런데 최근 종을 만드는데 희생된 아이가 혜공왕을 가리키며, 이는 어머니와 외삼촌의 전횡으로 21살의  나이에 죽임을 당한 어린 왕에 대한 신라인들의 연민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등장했다.

『한국어문학연구』 제47집에 수록된 「에밀레종 전설 연구사 비판」에서 성낙주 씨는 에밀레종 설화 중에서도 외삼촌이 등장하는 ‘보시형 설화’에 주목했다.

에밀레종 설화는 크게 아이의 희생을 어미의 실언 탓으로 실정한 ‘여인실언형’과 어미가 자의에 의해 아이를 바친 ‘자발보시형’으로 나뉘어진다.

그런데 ‘자발보시형 설화’에는 실언형에는 등장하지 않는 외삼촌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이 설화에서 외삼촌은 봉덕사 주종 불사의 종장으로, 주종불사가 거듭 실패하자 주위의 비난으로 고심에 빠진다. 당시 과부의 몸으로 그 집에 살고 있던 그의 누이동생이 오라비의 실패를 자신이 부덕한 탓으로 여겨 번민 끝에 자신의 아이를 바쳐 종을 완성시키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이 보시형 설화의 골자이다.

성 씨는 “이 설화가 불교로 교묘히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불교적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를 불교의 사신공양에 빗댄 기존의 해석들을 비판했다. 부처님 전생담에 등장하는 보살이나 이차돈 등 불교 사신담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지만, 이는 주인공 스스로의 의지로 생명을 바치는 반면, 에밀레종 설화에서는 아이를 하나의 제물로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밀레종 설화는 불교의 사신공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아니라 혜공왕대의 정치적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성씨의 주장이다.

성 씨는 에밀레종이 완성된 시점이 혜공왕 771년이며, 그 뒤 혜공왕이 쿠데타로 살해당하기까지의 정치적 상황이 에밀레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거의 비슷한 구조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치세에 만들기 시작했지만, 완성이 된 것은 혜공왕 7년(771)이었다. “경덕왕이 황동 12만 근을 내놓아 그 아버지 성덕왕을 위하여 큰 종 하나를 만들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그 아들 혜공대왕 770년 12월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공장이들을 모아서 기어이 완성시켜 봉덕사에 안치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종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765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혜공왕은 780년 쿠데타로 바로 다음에 선덕왕이 되는 김양상에게 살해당한다. 16년의 혜공왕 치세기간 동안 각종 천재지변과 96각간의 난 등 연이은 반란이 일어났다. 그가 김양상에 의해 살해당한 나이는 겨우 21세. 그의 죽음과 함께 신라 무열왕계로 이어지던 중대왕실은 몰락했다. 후대 학자들은 겨우 21살이던 혜공왕의 죽음의 원인으로 그의 어머니 만월부인과 임금의 외숙으로서 조정과 군문을 통틀어 최고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김옹에게 1차적인 원인을 묻고 있다.

성낙주 씨는 “에밀레종 설화의 등장인물들은 성덕신종 주성 당시 무열왕계 왕실 가계도와 일치한다”며 “부재한 아비는 사망한 경덕왕, 과부 어미는 남편을 잃은 만월부인, 철부지 아이는 혜공왕, 종장은 김옹”이라고 설명했다. 성 씨는 이에 덧붙여 “또 다른 설화에 등장하는 제2의 아이가 혜공왕의 사촌으로 후에 선덕왕이 되는 김양상이며, 김양상의 타도대상은 혜공왕을 에워싸고 있는 ‘군측의 악’ 즉 만월부인과 김옹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손진태가 채록한 에밀레종 설화에서는 첫 번째 아이가 종에 바쳐진 후 또 다른 한 명의 아이가 머리를 박아 피를 묻힘으로써 종이 드디어 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낙주 씨는 이 기록에 착안해 “김지정의 난이 만월부인 남매의 친위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성 씨의 견해는 그동안 혜공왕이 김양상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학계의 통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성 씨는 “삼국유사에는 혜공왕의 죽음이 780년 2월 김지정의 난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궐기한 김양상의 소행으로 기록돼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김지정의 난병에 의한 것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혜공왕을 죽인 인물을 김양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며 “김양상이 거병을 일으킨 애초의 의도는 만월부인과 김옹 집안의 친위 쿠데타 세력을 제거하고 중대왕실을 바로 세우려 한 것”이라는 주장을 피력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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